'아빠 육아휴직 증가' 일본의 반전…"육아는 여자가 하는 것"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23.08.0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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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 따라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기간 짧고 육아 사회적 인식 변화도 더뎌

인구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남성의 가사·육아 기여도를 높여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육아휴직 기간이 여성의 육아 부담을 나눌 만큼 충분치 않아서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남성 육아휴직을 역대 최고…6명 중 1명이 쓴다
1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5인 이상 사업장 6300곳을 대상으로 남성 육아휴직 상황을 조사한 결과 2022년도 사용률이 17.13%를 기록했다고 전날 발표했다. 이는 전년보다 3.16%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2012년과 비교하면 무려 9배 급증했다. 육아휴직이 가능한 남성 6명 중 1명이 이를 사용한 셈이다.



직원 1000명 초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올해 6월 기준 46.2%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NHK는 "기업 규모가 클수록 사용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면서 "대기업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일수는 평균 46.5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 자체는 유럽 육아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지만, 일본 사회의 인식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해온 일본에는 가사 활동은 여성이, 직장생활은 남성이 도맡아 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서다. 육아휴직을 요구하는 남성 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아 '파타하라'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파타하라는 부성을 의미하는 '파터니티'(paternity)와 괴롭힘을 뜻하는 '허래스먼트'(harrassment)의 앞 글자를 딴 단어다.



이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차원(차원이 다른) 저출생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50%, 2030년에는 8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4월부터는 직원 1000명이 넘는 기업에 남성 연 1회 육아휴직 사용률 공표를 의무화했고, 이를 300명 초과 기업에도 확대 적용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기업의 수는 기존 4000여개에서 1만7000여개 수준으로 늘어난다.

육휴 기간이 너무 짧다…"과감한 개입 필요"
남성 육아휴직자는 늘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아질수록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짧아지고 있어서다. 도쿄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7세 남성은 NHK에 "올해 1월 아이가 태어나서 2개월 정도 육아휴직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사용한 건 유급휴가 13일에 육아휴직은 하루였다"고 토로했다.

닛케이는 "이번 조사에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기간은 질문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2021년도 조사에서는 (휴직 기간이) '2주 미만'이라는 응답률이 50%를 넘었다"며 "1~2주 정도의 짧은 기간으로는 육아나 가사 분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의 이와마 요코 교수는 "후생노동성 조사에서 육아휴직 사용 기간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육아d에 참여하는 남성이 너무 적고, 부모 세대는 '육아는 여성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성에게도 최소한의 (육아휴직) 사용 의무를 부여해 사회 가치관을 바꾸는 시도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과감한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닛케이에 의견을 남겼다.

후생노동성은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됐다"고 자평하면서도 "다만 여성보다는 여전히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다. 모든 정책을 동원해 남녀 모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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