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흔드는 美, 당하지 않겠다는 中…그 사이 韓 위치는?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뉴욕=임동욱 특파원 2022.08.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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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위기의 차이나드림③

편집자주 8월24일 수교 30주년를 맞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생 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나라의 수출을 떠받치던 중국 시장이 한국산에 등을 돌리면서 대중국 무역수지가 사상 첫 4개월 연속 적자 위기에 몰렸다. 칩4,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 중국 견제 성격의 경제협력체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한중 관계에 부담이다. 또 다른 30년을 위한 새로운 한중 경제협력 모델을 찾아본다.

(평택=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뉴스1  (평택=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뉴스1


한국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중 대결에서 어느 한 진영으로 치우지지 않았지만 '영리한 줄타기'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형국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Chip4)에 이르러 한국은 색깔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한국은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 공격과 방어에서 한국이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어서다.



'타도 중국'에 진심인 미국
중국을 누르는 데 미국은 당파가 없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존 '미국 우선주의'는 상대적으로 후퇴한 모습이지만, '미국 우선'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미국은 패권 유지 수단으로 '군사적 리더십'에서 '경제적 리더십'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 기반이 절실하다.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자동차, 컴퓨터, 가전제품 등 일상적인 제품뿐 아니라 양자컴퓨팅,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전투기 등 다른 핵심 기술들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필수재가 됐다. 최근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로 산업 전반에 비상이 걸렸고, 미국은 이제 '반도체'를 안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28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법안'에 서명했다.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17명, 24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공화당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해 왔는데, 최근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변화가 생겼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생한 글로벌 공급 부족 문제는 미국이 다양한 기술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를 외국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2020년 1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점유율은 거의 제로(0%)에서 15%로 높아졌다.


미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반도체 산업을 중국 압박의 한 수단으로 삼을 태세다. 미국, 한국, 일본, 대만 4개국간의 반도체 동맹 성격의 '칩4'를 통해서다. 향후 투자 및 기술개발 방향을 이끌어,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5월 역시 미국 주도로 출범한 IPEF도 지역 내 중국의 영향력에 대항하고, 미국의 힘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등 지역 강국들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에서 새로운 무역 규칙을 세우고, 궁극적으로 미국의 경제 리더십을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22.8.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22.8.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도체판 'OPEC', 위기의 중국
IPEF의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하지만 구체적 품목이나 행동 방안 등 윤곽이 드러난 게 없다. 한편에서는 중국 없는 글로벌 공급망은 불가능한 얘기라며 중국에 과연 타격을 입힐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중국을 혼내겠다면서도 2020년 미국의 대중 기술 수출 승인 건수가 2652건으로, 전체 기술 수출 중 94%에 달한 건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칩4에 이르러 중국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얼마전 박진 외교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칩4' 관련, "윈-윈을 견지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한다"며 중국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1분기 기준으로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69.8%다. 미국 기업 마이크론을 더하면 95.6%에 이른다. 중국이 위탁생산을 맡기는 것도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UMC,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까지 4개 회사 세계 점유율은 82.7%다. 점유율이 5.6%에 불과한 중국 SMIC만으로는 중국 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말하자면 칩4는 반도체판 석유수출국기구(OPEC)인 셈이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처럼 한한령으로 보복을 하기도 여의치 않다. 보복과 보복이 거듭 되다보면 중국 산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위험이 크다.

미국에 산업 생태계 사활을 맡기게 된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 더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 2018년 오는 2025년까지 자체 생산 반도체 비중을 3분의 2 이상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굴기에 나섰다. 그러나 칩4의 한 축인 일본을 통한 반도체 장비 공급이 여의치 않게 되면 이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이미 네덜란드 ASML이라는 스캐너 회사 때문에 곤란을 겪은 바 있다.

중국은 칩4에 참여하더라도 중국으로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연일 한국에 호소와 경고를 병행한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사설에서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 중 중국·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라며 "이렇게 큰 시장과 단절하는 건 상업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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