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임대사업자인 A법인은 최근 대출 거래은행을 바꾸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1%포인트 가까이 낮은 금리로 약 200억원을 대출 받았다. 새로 거래를 튼 시중은행은 대출 상담 과정에서 "해외 지점에서 바로 자금을 조달해 다른 은행보다 금리를 낮게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이들 4대 시중은행의 외화대출(외화대출금+역외 외화대출금 등) 평균 잔액 합산액은 79조1306억원으로 지난해 말(68조7404억원)보다 10조원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19 확산 등 어려운 경기 여건에 기업들의 외화대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크지만 은행들이 기업대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해외 지점 외화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영업 경쟁을 벌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국내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뛰면서 해외 지점을 통한 대출과 금리 차이가 50~100bp(0.5~1.0%) 혹은 그 이상 벌어졌다"며 "기업대출을 늘리려는 은행과 저리 대출을 찾는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은행 해외 지점이 국내에 있는 기업(거주자)에 대출을 해주는 건 엄밀히 용도 제한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규정 위반은 아니다. 한은의 외화대출 사례집에는 "외화대출 용도 제한을 받는 외국환은행은 '국내 영업소'에 한정돼 해외 지점이 거주자에 취급하는 외화대출은 용도제한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돼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이 역외(해외 지점)에서 실행되고, 국내에선 원화대출로 집행된다는 점에서 외화대출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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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행업계에선 외화대출이 제조기업 시설자금이 아닌 부동산 임대사업으로 흘러가는 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많다. 외화대출 용도를 제한하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의사나 한의사 등 개인사업자들이 싼 금리의 엔화대출을 마구잡이로 빌려 부동산 등에 투자했다가 환율 변동으로 어려움을 겪자 2010년 외화대출 용도제한 취급 규정이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며 "취지를 생각한다면 국내 영업소든, 해외 지점이든 외화대출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도 "해외 현지 진출 국내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해외 지점이 국내 본점이나 현지에서 조달한 외화를 국내로 다시 들여와 부동산 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은행업계에선 제도적 구멍이 있다면 외화대출 용도제한 취지를 살리는 방식의 보완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