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피네이션
그는 명실상부 5년 단위로 문화 천지가 개벽한 지난 20년 세월의 한복판에서 가요계의 판을 바꾸어버린 인물이었다. 조피디를 참고한 플로우와 라임, "배달 사고 없는 딜리버리"를 통해 직진하는 사랑 고백 및 직설의 사회 풍자를 일관되게 펼쳐온 그가 가수로서 마지막 앨범일지도 몰랐던 6집의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접수한 지도 어언 10년. 그 10년 사이 싸이는 자신의 애초 목표였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피네이션(P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본격화했고, 그러면서 수 년간 텀을 두었던 가수 활동에도 다시 눈을 돌렸다. 앨범 타이틀은 '싸다9'. 어떤 식으로든 '싸'와 '이'를 엮어온 그의 앨범 제목 역사에 과연 누를 끼치지 않을 최적의 이름이다. 참고로 '싸다9'는 싸이가 설립한 피네이션에서 나오는 첫 번째 싸이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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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서울훼밀리의 곡으로 알고 있는 '이제는'은 사실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 배우 겸 가수였던 피아 자도라가 함께 부른 'When The Rain Begins To Fall'이 원곡이다. 6인조 밴드 서울훼밀리는 84년에 발표된 이 곡을 3년 뒤 '애창팝스 번안가요'라는 부제를 단 자신들의 스페셜 앨범에 번안해 실었다. 당시 김재덕의 편곡은 뉴웨이브/신스팝 풍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오동식이 다시 붙인 노랫말은 곡에 전혀 새로운 사연을 녹여내 한국 대중이 이 곡을 서울훼밀리의 오리지널로 믿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오동식은 서울훼밀리의 대표곡 '내일이 찾아와도'를 작곡한 사람이다.) 탁성을 배제하고 위일청에 빙의한 싸이, 김승미의 카리스마와 다른 카리스마를 뽐낸 화사가 열창한 이번 버전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즐기면 그 짜릿함이 배가된다. 가사에도 나오듯 지난 시절 "그리움과 아쉬움"의 공간이었던 공중전화 부스를 둘러싼 우윳빛 영상은 현란한 편집보단 자연스런 동선을 앞세워 이미지 자체에서 이미 뉴트로스러움을 덕지덕지 묻어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팔팔했던 싸이도 이제 40대 중반에 이르렀다. 중년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싸이 역시 지나온 인생을 음악으로 되돌아보는 일을 새 앨범의 주요 정서로 택한 눈치다. 가령 "데뷔 10년에 활동 2년"의 내막을 분노와 자조를 뒤섞어 풀어낸 5집의 '싸군'에 맞먹는 '나인트로(9INTRO)'부터 그런 조짐을 보이는데, 16년 전 히트곡 '연예인'을 뒤집어 다룬 'Celeb'에선 대놓고 1차원적 과거 회귀를 노리는 식이다. 그리고 지나간 추억과 지나갈 추억 앞에서 복잡한 감정에 젖어드는 '밤이 깊었네', 'Happier', 'Everyday', 'forEVER'는 이내 정답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를 '내일의 나에게'로 가만히 데려간다. 이처럼 '넌 감동이었어'를 부른 성시경이 참여한 '감동이야'까지 포함해 앨범 '싸다9'는 수록곡 절반 이상을 한 중년 가수의 회상 또는 회한으로 물들였다. 결국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내놓은 새 앨범은 반환점에 이른 싸이 음악의 재도약, 나아가 그 음악 무대의 제2막에 가까운 무엇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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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게 오래 가고 심플한 게 강력하다."
이는 "변화보다는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는 뮤지션 싸이의 오랜 신조다. 그것이 뉴 잭 스윙이 됐건 훵크가 됐건, 강력한 헤비 록이 됐건 '신나는 비트와 솔직한 가사'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싸이 음악의 바탕을 이룬다. "자연스럽고 심플한" 싸이 음악의 뿌리와 열매는 그렇게 늘 한결같았다. 육체의 감각으로 내면의 감성을 건드린다. 9집도 그렇고, 아마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앨범들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