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좌석 15만원→75만원…팬심 울리는 '플미', 또 다시 기승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박수현 기자 2022.04.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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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렛미플라이' 출연 배우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 /사진=뉴시스뮤지컬 '렛미플라이' 출연 배우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프레스콜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 /사진=뉴시스


#지난달 31일 오후 2시. 대학생 김모씨(25)는 인터파크에서 뮤지컬 데스노트의 3차 티켓예매에 실패했다. 김씨는 특정열이 모두 2인석으로 예약돼 있는걸 보고 매크로(자동 반복) 프로그램을 의심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티켓팅이 끝나자 인터넷엔 데스노트 2인석을 판매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해당 공연의 VIP석 정가는 15만원이지만, 인터넷에선 6일 기준 최고 75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60만원의 '플미(프리미엄)'가 붙은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되면서 공연 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뜨거워진 관심만큼 매크로 등 불법프로그램을 활용한 티켓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크로를 이용해 표를 대량으로 예매한 판매자가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식이다. 이미 보편화된 편법 '매매'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6일 머니투데이 취재에 따르면 이날 온라인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는 플미 티켓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경우에는 VIP 좌석의 정가가 15만원이었지만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는 출연진의 무대인사가 포함된 VIP좌석 티켓이 75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다른 공연의 VIP좌석 티켓에도 2~6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한 인터넷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 정가 15만원인 데스노트 VIP 좌석 티켓을 4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한 인터넷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 정가 15만원인 데스노트 VIP 좌석 티켓을 4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매크로를 활용한 티켓 구매는 공연계의 오랜 골칫거리다. 인기 공연의 표를 대량으로 사서 되팔면 팬들은 정가에 공연을 볼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이익도 제작사나 배우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로 소규모 예매처는 물론 업계 최대 규모인 인터파크에서도 전체 티켓 중 매크로를 사용해 구입한 티켓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뮤지컬 티켓 예매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립서비스 관계자는 "사람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예매 속도 등을 고려해 매크로 사용여부를 추정하고 있다"면서도 "시간 등을 기준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사용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플미 티켓으로 인한 피해는 중소 뮤지컬 제작사에게 더욱 크게 돌아간다.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면 가장 인기있는 맨 앞줄이 10여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규모가 작다보니 좌석에 따라 무대가 잘 보이지 않거나 공연 음향이 들리지 않는 곳도 있다. 매크로 사용자가 인기석을 전부 구매하면 일반 고객은 웃돈을 주고 살 수 밖에 없다.

중소 뮤지컬제작사 관계자 A씨는 "거리두기 강화 때문에 한동안 소극장의 경우 가장 인기 있는 맨 앞줄은 10여석 정도만 예약할 수 있었다"며 "매크로를 직접 사용하거나 업자들이 되파는 행위에 대한 피해가 대극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고 했다.


인터파크에서 정식 예매처를 통해 공연을 예매해달라고 안내하는 사진. 그러나 안내와 관계없이 온라인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는 플미 티켓이 다수 거래되고 있다. /사진=인터파크 갈무리인터파크에서 정식 예매처를 통해 공연을 예매해달라고 안내하는 사진. 그러나 안내와 관계없이 온라인 티켓 거래 사이트에서는 플미 티켓이 다수 거래되고 있다. /사진=인터파크 갈무리
경찰은 매크로 사용자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처벌 가능성은 낮다. 매크로 프로그램이 티켓 예매처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다. 또 티켓 예매 플랫폼 입장에선 인기 공연의 티켓 예매 때 서버가 마비되면 매크로 때문인지 일반 사용자 폭증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우리 시스템을 해킹하는 게 아니고 개별 사용자의 컴퓨터를 통해 예매를 빠르게 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며 "지금까지 매크로 사용과 관련해 경찰 등에 수사를 의뢰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 같은 한계 때문에 2020년 12월 공연법이 개정되며 입장권·관람권 등의 부정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의무가 규정됐다. 하지만 매크로 악용에 대해서는 명시적 처벌 근거가 없어 실질적 단속에는 한계가 있었다.

뮤지컬 팬들은 '플미' 티켓에 대한 대응을 요구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선 말못할 속사정이 있다. 매크로, 플미 티켓을 적극 단속한다고 공론화할 경우 일부 업자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적발과 처벌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사의 티켓 판매 관리 여력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꼴이다.

중소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 B씨는 "사실 소규모 제작사는 티켓만 팔리면 그게 플미든 일반 고객이든 신경쓸 여력이 없다"며 "기술적으로도 적발도 어렵고 법적 권한도 없는 회사 입장에서 돈과 비용을 써가며 플미를 잡기 쉽지 않다"고 했다.

실효성 있는 처벌을 위해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매크로 이용한 입장권·관람권 등의 부정판매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병훈 의원실 관계자는 "현행법으로 매크로를 처벌하기 어렵고 플미 티켓등이 장기적으로공연업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해 대표 발의했다"고 했다. 해당 법안은 빠르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돼 내년 상반기에 시행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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