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상과 외교안보의 긴밀한 연계가 시급하다

머니투데이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2022.03.2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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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상과 외교안보의 긴밀한 연계가 시급하다


국제 통상 환경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해 왔다.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도하라운드 출범으로 2000년대 초반 통상에서 외교안보 이익 못잖게 산업 이익이 주목받았다. 이후 도하라운드가 부침을 거듭할 때도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FTA(자유무역협정)를 활용한 통상정책으로 산업 이익을 모색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 이익을 목표로 하는 통상정책은 눈에 띄게 퇴색했다. 글로벌금융위기와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각국은 산업 이익을 앞세운 통상보다는 자국산업 보호에 급급했다. 한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면서 산업 이익에 기반한 자유무역이 메가 FTA의 형태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2017년 취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에서 외교안보 시각이 결부된 자국중심주의 정책을 채택했고, G2(미국·중국)로 부상한 중국과 통상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제통상 질서도 자연스럽게 미국 정책 방향과 유사하게 변화했다. 2021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자국중심주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외교안보 동맹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이제는 신뢰할 만한 동맹들끼리 기술 탈취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외교안보와 통상협력을 연계하는 시대를 맞았다. 그 구체적 사례가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이나 인도-태평양 경제네트워크(IPEF)다.

과거 한국의 통상정책은 시대적 변화에 맞게 부응했었다. 2000년대 FTA가 횡행하던 시절 혜안을 지닌 노무현 대통령은 장사꾼의 심정으로 한미 FTA 협상을 진행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뚝심 있게 발효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연됐던 한중 FTA를 마무리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동아시아 최대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를 발효시켰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통상정책이 외교안보적 고려를 담을 수 있도록 충분히 진화됐는지 의문이다.



작년 하반기 요소수 사태는 정부가 외교안보 환경 변화가 통상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가 국제 외교안보 환경을 잘 파악했다면 2020년 4월 호주가 중국의 코로나19 발원지 조사를 촉구하면서 양국간 통상갈등이 시작할 시점이나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시점에서는 석탄을 원료로 하는 요소수 생산 부족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2021년 2월 중국이 석탄부족으로 전력난에 시달리고 10월에 요소수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는 시점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제재 차원에서 시작한 미국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수출통제면제 국가 명단에서 빠졌다가 뒤늦게 포함된 일도 있다. 외교안보 상황에 대한 통상당국의 느린 대처는 진한 아쉬움과 아찔함을 남긴다.

이런 뼈아픈 실수들이 특정 부처나 특정인의 잘못으로 치부될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 통상 시스템이 외교안보와 연계된 현재 통상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상태를 방치하면 그간 외쳐왔던 글로벌 통상강국이라는 말은 낯뜨거운 수사로 전락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이 외교안보와 통상이 긴밀히 연결되는 시스템으로 개혁할 적기이다. 모쪼록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서 한국이 글로벌 통상강국으로 다시금 자리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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