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어쩌다 586세대는 공공의 적이 되었나?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02.2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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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김남국 교수


3월에 치르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어떤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자주 제기된다. 현 정부는 2016년과 2017년의 촛불시위를 통해 통상 12월에 치른 대통령선거 일정을 앞당겨 탄생했다. 촛불시위에는 주로 대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했지만 이른바 국정농단으로부터 절차적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요구가 가장 컸고 사회적 불평등 해소 요구가 뒤를 이었다.

즉 촛불시위는 예정돼 있던 정치일정을 벗어나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지만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공통된 요구를 되짚어보면 선출된 권력에 의한 체계적인 의사결정과정의 복원과 예술인 블랙리스트에서 보인 자유의 침해에 대한 방지, 사회적 불평등의 악화를 막을 경제민주화 강화 등 합리적인 개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문재인정부는 원칙과 제도에 따른 국정운영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하는 과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 복원이라는 첫 과제는 박근혜정부에서 현 정부로 정권교체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됨으로써 따로 평가받을 만한 사안이 되지 못했고, 두 번째 본격적인 과제는 개인의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있었다 하더라도 부동산 가격폭등으로 그 증가분이 상쇄되는 바람에 그 어떤 불평등 완화정책도 빛을 잃었다.

더구나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서 보인 폐쇄적 감시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와 자유에 대한 우려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규제로 점철된 방역체계 일상화에서 더 커진 채로 등장했다. 즉 현 정부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근거한 방역정책을 채택하면서 전면봉쇄를 피해갔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불가피한 규제 위주 방역과정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시민들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적된 평가가 정권교체론으로 나타났고 정권의 주축이라는 586세대가 비난의 표적이 됐다. 586세대를 균일한 집단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세대의 세계인식이 갖는 구조적 모순은 87년 체제에서 비롯된다. 발전국가의 유산 아래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정의와 연대의 공공성을 믿었던 87년 체제에서 586세대는 개인의 과도한 도덕적 의무를 당연시하면서 사적인 개인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곧이어 97년 체제가 발전국가론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모델을 전면화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경쟁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사회를 불러왔을 때 586세대는 여전히 사회정의와 거대담론을 말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탄하면서 개인의 욕망에 무관심한 듯했다. 그러나 정의를 독점하듯 떠들던 586이 그들만의 동맹을 유지한 채로 경쟁의 규칙을 무시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착실히 챙기는 것이 드러났을 때 너무도 당연하게 내로남불 논쟁에 휩싸였다.

97년 체제 이후 한국 사회는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분배를 선호하는 흐름이 전 세대에서 커졌고 이런 분위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라는 실질적 민주주의 목표와 모순된다. 이를 해소하려면 역사적으로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단순한 공정을 넘어서 타고난 운의 문제를 통제하려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떤 세대도 정의담론을 독점할 수는 없다. 그래서 586세대가 가장 빛난 시절은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진 1980년대였고 당시 민주화에 기여로 역사가 이 세대에게 부여한 역할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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