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제주 오픈카 안전벨트 사건의 숨겨진 진실들[유동주의 PPL]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1.12.16 04:13
글자크기

[유동주의 PPL] '자극적인 사건+일방적 여론' 검찰과 언론, '눈치' 안 보고 제 역할 하고 있나

편집자주 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전벨트안전벨트


제주에서 오픈카를 빌려 음주운전 중 고의사고를 내 안전벨트를 안 한 여자친구를 살해했다는 일명 '제주 오픈카 안전벨트 사건'의 1심 결론이 16일 나온다.

지난 9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면서 전국적 이슈가 된 이 사건의 이면엔 몇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다. 사건의 이해를 위해선 필수적임에도 그동안 일방의 주장, 혹은 일방적 여론에 밀려 보도되지 못한 내용들이다.



제주 한림읍 한적한 도로에서 새벽시간 오픈카를 음주운전하던 남자친구가 과속으로 커브길에서 사고를 내 조수석에 탔던 여자친구가 큰 부상을 입고 그 이듬해 사망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검찰은 '고의 사고에 의한 살인'을 남자친구 A씨 측은 '교통 사고'를 주장하고 있다.

1심 선고 뒤에도 항소심으로 이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큰 만큼,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몇가지 사실들을 늦게나마 소개한다.



숨진 피해자 여자친구도 음주운전했다는 사실, 왜 보도되지 않았을까
첫째, 피해자인 여자친구 B씨도 같은 오픈카를 사고 나기 전 숙소로 가는 길에 음주운전했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B씨는 사고가 나기 불과 몇십분 전, 같이 술을 마신 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한다. 또래들처럼 아반떼를 빌리려다 하루 10만원에 포드 머스탱 오픈카를 빌린 두 연인은 제주의 밤도로를 과속으로 위태롭게 교대로 운전했다.

과속을 하기도 하고 신호를 어기며 위태롭게 운전하자 조수석에 앉은 남자친구 A씨가 차를 세우라고 한다. 하지만 여자친구 B씨는 바로 세우지 않고 버티다 숙소로 가는 길을 지나쳤다는 A씨의 지적을 받고서야 뒤늦게 차를 멈춘다. 피해자 B씨의 음주운전 상황은 블랙박스에 모두 담겼고, 지난 10월 공판 법정에서 동영상으로 그대로 재생됐다. 하지만 이 내용은 그간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곽지해수욕장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해 숙소를 향하던 이들의 대화는 블랙박스에 아래와 같이 녹화·녹음돼 있었다.


남자친구 A : 여보 운전할 수 있어? 확실히 말해!

여자친구 B: (음주운전하다)걸리면 내가 걸려, 왜냐면 나는 (음주운전 적발돼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되더라도)운전 안 해도 되니까

남자친구 A: 아침에 (운전)하면 안 돼?

여자친구 B: 지금 해야 돼! 주차는 오빠가 해. 걸리면 내가 걸리니까 .

남자친구 A: 여기 아냐! 타임 ! 뒤야 (숙소)가는 길!

여자친구 B: 걸리면 돈(벌금)은 같이 내는 거다! 걸리면 내가 내!

남자친구 A: (운전)하고 싶으면 내일 해. 옆에 세워 그니까 (브레이크)밟으라고 끝까지! 빨리 세워 세우라고! 뭐하는 거야. 줄여 속도 줄여! 차 돌리라고!

여자친구 B: 걸려도 내가 걸려!

남자친구 A: 유턴 하세요!

여자친구 B: 어 헐...(교차로에서 유턴을 위해 차를 세운다. 이후 운전자 교체)

여자친구 B: 걸리면 내가 걸린다니까! 아 나는…

남자친구 A: 잡아 꽉 잡아 잡으라고 (속도를 낸다)

여자친구 B: 안녕~ 안녕~달려 달려~아(신나서 소리지름) 우회전 우회전 ~헐 술먹으니까…(곧 숙소 도착)

숙소에 도착했지만 이들은 체크인도 하지 않고, 용변만 간단히 본 뒤 A씨가 계속 운전해서 바로 다시 도로로 나간다. 여자친구 B씨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새벽시간이라 A씨는 라면을 사려면 다시 나가야 한다고 하고 출발한다. 이들은 곽지해수욕장 방면으로 향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를 맞게 된다.

블랙박스에 담긴 여자친구 B씨의 음주운전 사실은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당시 남자친구 A씨가 운전대를 잡게 된 상황, 라면을 사러 다시 나가면서도 과속을 한 이유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일방의 '감정'까지 반영된 언론 보도와 거기에 영향받는 검찰의 기소에서 발생하는 오류, 누가 책임져야 하나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둘째, 사고 직후 남자친구 A씨가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거나 병원에 면회를 가지 않았고 장례식에 불참했다는 내용도 피해자 B씨 측 일부 유족에 의해 주장됐지만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이는 블랙박스 영상과 병원 기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고 법정에서도 이미 입증이 됐다. 특히 A씨는 B씨가 실려간 제주 병원의 중환자실 앞을 1주일 가량 지켰고, 사고 당일 A씨 모친까지 충남에서 제주에 내려와 이틀간 A씨와 병원에 머물기도 했다. 이때 A씨 모친은 며칠 씻지 못하고 병실에서 지내던 A씨를 근처 모텔서 하루 재우고 씻게 한다. 이 사실을 안 B씨 일부 유족은 A씨가 씻고 모텔서 자고 온 것을 비난하며 "B는 사경을 헤매는데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하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사고는 2019년 11월10일이었고 B씨는 9개월 가량 지난 2020년 8월23일 사망했다. B씨 유족 중 일부가 A씨가 병원 면회를 오지 않았다고 주장한 건 B씨가 실려갔던 제주 병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B씨 유족 중 일부가 제주에서 다른 곳으로 병원을 옮겼고 A씨에겐 병원이 어딘 지를 알리지 않았다.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A씨에게 장례식을 알리지 않아 참석이 불가능했다.

셋째, A씨에게 유리한 B씨 조부모의 증언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법정에서 소개된 피해자 B씨의 할아버지가 A씨의 탄원서 요청에 응하며 했던 통화 내용에 의하면 B씨는 부모나 언니와 함께 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연애하면서 결혼얘기가 오가던 중에도 B씨가 상견례는 부모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부분은 사망한 피해자 B씨의 가정사에 관한 내용이어서 언론서 다루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가정환경은 중요한 참고요소다. 그러한 내용이 껄끄럽단 이유로 숨기면 사건 관련 상황을 오판할 수도 있다.

법정에서 공개된 B씨 할아버지와 A씨의 통화 내용 중 B씨 가정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부 내용만 생략하고 되도록 있는 그대로 아래에 소개한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A씨를 위로하면서 하는 통화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여자친구 B씨 할아버지: 증언해줄 사람은 할아버지라고 얘길해. 너하고 A하고 할머니하고 제일 가까웠어. 어차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속 키웠잖아. 사실대로 얘기하면 돼. 자네하고 얼마나 잘 지냈는데 뭔 살인이야. 술 한잔 먹고 사고난 거 가지고.
남자친구 A씨 : 탄원서 하나 써 주실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 B씨 할아버지: 그래 엄마, 아버지랑 같이 와. 주소 쓰고 이름 쓰고 (탄원서)할 줄 알아. 거짓말이 힘이 드는 거지. 사실대로 말하는 건 힘이 안들어.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엄마하고 한 번 와. 할매도 몸 많이 좋아졌어. 자네 위주로 하는 거지. 내 정신도 그래. 사실 그대로 붙일 것도 없고 꾸밀 것도 없어. 같이 식사한 사진도 있고 한데 그거 뽑아서 친하게
지냈다고 하면 돼. (B씨 일부 유족이 주장하는 내용이)전부 다 거짓이라고 하면 끝이야.
오히려 걔네들(B씨 일부 유족)이 구속될지도 몰라. 내가 생각할때는 자네 죄없어. 술먹고 사고난 게 자네 뿐이야? 운이 나빠서 그런건데 무슨 살인이야? 살인은 어떤 목적을 노려가지고 이익을 가지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이는
건데 그런 거 없잖아.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선물도 하고 식사도 하고 했는데 무슨 살인이야 뭣이 살인인데?
살인이란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제주도 같이가서 술한잔 먹고 한 게 무슨 살인이야.

이 사건은 1심 판결에서 '살인죄' 기소가 어떻게 결론 날지에 큰 관심이 쏠리지만, 정작 더 중요한 건 사건을 둘러 싼 '현상'이 우리에게 반성할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달려~"…제주 오픈카 안전벨트 사건의 숨겨진 진실들[유동주의 PPL]
제주 공판에 방청객으로 앉아 있을 수 없는 대중들은 이런 류의 '자극적'인 사건에 대해 언론이 전달하는 제한된 정보로 겉핡기식으로 '오해'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사건이다.

검찰과 언론의 역할 그리고 사법작용에 관한 여러 논쟁적 과제를 이 사건이 던져 주고 있다. 경찰이 특가법 상 '위험운전 등 치상'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살인'으로 바꿔 기소하는 과정, 그리고 재판 중 '운전치사'로 공소내용을 변경하지 않고 예비적으로도 '운전치사'로 공소하지 않은 검찰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도 지켜볼 일이다.

사법기관과 언론이 과연 여론과 대중의 '눈치'를 어디까지 살펴야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사건이다. 1심 결과와 상관없이 2심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내용이 더 나올지 그리고 그 내용들이 온전히 대중에게 전달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룬 대부분의 언론들은 제주법원에서 열렸던 5차례의 공판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언'을 다시 '전언'하는 방식으로 보도했다. 이런 방식의 위험성이 이 사건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지역 매체들은 그나마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려 노력했지만 대중들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엔 부족했다.

유동주 기자유동주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