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300일, 개혁의 성과에서 대상으로 [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1.1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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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행정부에 속하지만 직무에 대해서는 독립성이 보장되는 독특한 기관이다. 공수처법 3조2항은 '공수처는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라고 돼 있다. 수사와 공소권(행정권)을 행사할 권력기관임에도 독립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어 권력분립의원칙에 어긋난다는 위헌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입법부와 사법부뿐만 아니라 행정부 소속 공무원도 그 수사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행정조직의 위계질서에 포함시켜서는 객관성이나 신뢰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법 취지를 받아들여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같은 수사기관이지만 검찰과 공수처가 다른 게 이 부분이다. 검찰은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에 절대 독립적일 수 없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법무부장관의 수사 지휘가 잇따르면서 대검찰청은 정부조직법상 행정부 외청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공수처에 독립성을 부여한 것은 공수처가 행정부의 통제로부터 가능한 벗어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공수처법에는 '수사처 소속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립성과 중립성은 비슷한 말 같지만 독립은 공수처가 누릴 권리이고, 정치적 중립은 공수처가 지킬 의무이다. 독립성이 곧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편견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정치적 중립성은 요원하다.

출범 300일을 넘긴 공수처의 현주소를 돌아보면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에 맞게끔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선뜻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공수처는 1호 사건으로 크게 봐 여권 인사라 할 수 있는 조희연 교육감의 해직교사 부당 특채 의혹을 다뤘다. 하지만 공수처법에 교육감은 기소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 개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수사 128일 만에 조 교육감을 검찰에 넘기면서 기소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아직까지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조 교육감 사건을 포함해 12개 수사에 착수했다. 이 가운데 제1야당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총장과 관련된 사건이 △옵티머스 사건 부실 수사(직권남용) 의혹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수사 방해(직권남용) 의혹 △고발사주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 등 4 건이다. 3분의 1에 해당한다.

특히 공수처는 비교적 최근 입건한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총선 직전 윤 전 총장이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게 여권 관계자, 언론인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할 것을 지시하고, 손 전 정책관이 휘하 검사들에게 지시를 해 결국 고발장이 야당에 넘어갔다는 내용이다. 공수처는 기각되기는 했지만 손 전 정책관에 대해 '1호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또 현재까지 손 전 정책관을 2차례, 김웅 의원을 1차례 불러 조사했다. 집중적인 수사에도 아직 윤 전 총장의 지시를 보여주는 연결고리는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친여 인사와 관련된 사건은 공수처가 수사를 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공수처 초기 입건된 △이규원 검사 윤중천씨 허위 면담 보고서 작성 의혹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 등이 그렇다.


이미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에 대한 '황제 소환' 논란으로 한차례 중립성에 상처를 입었다. 친여 성향의 검찰 지도부와 사전 교감을 통해 '하청감찰'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길게는 김영삼 정부때부터 제기된 공직자 수사 전담 기관 설립에 대한 요구가 결실이 돼 만들어진 공수처라는 점에서 지극히 경솔한 처사다. 개혁의 결과물인 공수처가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수처는 법이 부여한,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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