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0’, 조현병 걸린 아들을 위해 엄마는 어디까지 갈까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10.0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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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BS 한국방송사진제공=KBS 한국방송


애란(장영남)은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임대 아파트 거주자. 보험, 싱글맘, 임대 아파트라는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 애란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약자다. 그러나 아들 도훈(김강민)이 있어 적어도 같은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하다. 도훈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서울대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잘난 아들에게 병이 발병했다. 조현병이다.

‘F20’(홍은미 감독, KBS 한국방송·몬스터유니온 제작)은 조현병을 소재로 하되, 조현병에 걸린 당사자보다 그들을 돌보고 바라보는 엄마에 집중하는 영화. 애란은 아들의 조현병 발병을 계기로 병원에서 경화(김정영)를 만나게 된다. 이미 오랜 시간 조현병에 걸린 아들을 돌보며 살아온 경화는 애란에게 큰 의지가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끈끈해 보이던 그들의 관계는 경화가 애란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균열되기 시작한다. 아들 도훈이 조현병 환자라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경화가, 애란은 부담스럽다. 심지어 이사 오는 첫날부터 경화가 바람난 남편에게 이혼당한 싱글맘이고 경화의 아들 유찬(유동훈)이 조현병 환자란 사실이 아파트 커뮤니티를 통해 동네방네 소문난 상태라는 점이 애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오해와 편견이 많은 정신질환인 조현병을, 그를 앓는 가족과 주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F20’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편견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영화는 초반부터 타인의 잣대로 차별하고 배척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분양동 주민인 정원(유서진)이 서울대생 아들을 둔 애란과만 대화를 나누고 다른 임대동 주민들에겐 눈길도 안 주는 장면이 그 시작. 이는 정원이라는 한 인간의 인격 문제만이 아니다. 애란 역시 임대동 주민들 앞에서 자신을 상대해주는 정원을 은근히 편들고, 임대동 주민들 역시 같은 처지면서 은근히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애란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사진제공=KBS 한국방송사진제공=KBS 한국방송


변 집사(이지하)나 ‘초코엄마’(김미화)로 대표되는 임대동 주민들도 자신들의 잣대로 때에 따라 남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마찬가지. 경화가 이사 오는 첫날부터 주민들에게 신상이 낱낱이 밝혀지며 배척을 당하는 것에는 조현병을 앓는 아들이 가장 큰 이유지만 든든한 뒷배경이 없는 가난한 싱글맘이라는 요소도 포함돼 있다. 영화는 같은 임대 아파트에 살아도 나의 잣대에 못 미치고, 나보다 못하는 판단이 서면 서슴없이 편을 가르는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휴거(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신조어)’를 시작으로 ‘빌거(빌라 사는 거지)’, ‘이백충(월수입 200만원 이하)’ 등 다양한 모멸적인 혐오 신조어들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애란은 아들 도훈의 병이 밝혀지면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차별과 배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어찌나 큰지, 뒤로 갈수록 도훈의 의심처럼 아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엄마의 일상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F20’은 애란의 두려움을 원동으로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강렬한 서스펜스를 맛보게 한다. 아파트 내에서 길고양이가 처참한 형태로 살해당한 것을 기점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두려움과 분노가 극에 달하며 경화는 코너에 몰리고, 그를 바라보는 애란의 두려움도 극대화된다. 경화는 정말 애란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을까, 도훈의 조현병은 어떻게 밝혀질까, 그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저들은 어찌될까 등등 어느덧 관객이 애란의 입장에서 몰입하게 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의 잣대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병 이전에 에이즈나 한센병에 대한 차별이 그랬고, 그 외에 모든 남과 다른 낯선 존재들이 배척을 당해왔던 역사가 있었고 현재도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KBS 한국방송사진제공=KBS 한국방송

‘F20’은 조현병의 국제 질병분류코드를 의미한다. 환각과 망상, 이상행동 등이 나타나는 조현병은 평생 유병률이 1%로, 평생 100명 중 1명은 발병할 만큼 많은 이들이 걸린다고 한다. 공황장애나 조울증 등이 차츰 사회적 편견을 벗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조현병은 여전히 영화 속 상황처럼 강한 편견을 받고 있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진짜 무서운 게 조현병인지, 그를 접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배척해버리는 사람들의 잣대와 시선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오랜 시간 조현병을 보아오며 사람들의 차별에 단련된 강인한 엄마 경화를 연기한 김정영의 내밀한 연기가 눈에 띄며, 아파트 주민들을 연기한 유서진, 이지하, 김미화 등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내 주변의 이웃들을 보는 듯 생생하다. 그리고 장영남. 105신 중 102신에 등장하는 장영남은 서울대생 아들의 병을 알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몰두하다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는 애란을 압도적으로 표현해낸다. 장영남의 몰입도 충만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극장에 갈 이유가 충분할 정도.



‘F20’은 10월 6일 개봉하며, ‘KBS 드라마 스페셜’로 TV로도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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