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해야

머니투데이 이자형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2021.07.1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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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차원의 국제법 논의와 법치주의 증진에 대한 한국의 기여

이자형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이자형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국제법은 전쟁과 평화의 역사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가들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전략가 베게티우스의 경구를 신봉하며 전쟁을 정당화했다. 1928년, 그 오래된 전쟁을 국제법을 통해 불법화하려던 혁신적 시도가 있었다. 바로 '켈로그-브리앙' 조약(부전조약) 체결이다. 당시 프랑스 르 아브르시(市)가 미국 켈로그 장관에 선물한 펜에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가 각인돼 있었다.

부전조약도 2차 세계대전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전쟁 중에도 평화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했다. 종전과 함께 설립된 유엔은 헌장에서부터 힘에 의한 강요보다 다자주의와 국제법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근대의 발명'인 평화 구축에 이바지했다. 유엔 창설 이후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음은 물론, 우리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전쟁의 불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76년간 유엔의 세 기둥, 즉 평화·안보, 인권, 개발은 법치주의가 떠받쳐왔다. 특히, 한국은 정부수립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당시 신생기구인 유엔의 규범수호자 역할 덕을 톡톡히 보았고, 유엔이 표방하는 법치주의와 상호의존적 세계질서 덕분에 반세기도 안 되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이토록 한국과 유엔의 인연은 30년 전 유엔가입 훨씬 이전부터 깊고도 진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한국은 유엔시스템의 긍정적 역할을 보여주는 모범사례이다.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의 법치주의 증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제형사정의 추구와 중대범죄 예방노력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유엔은 국제법위원회를 활용해 제노사이드 협약, 유엔해양법협약 성문화 및 국가책임 초안 채택 등 '국제법의 점진적 발달과 법전화'를 이끌고,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170건이 넘는 국제 분쟁을 해결해 왔다. 구유고?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Y, ICTR) 및 크메르루즈 전범재판소(ECCC) 등 특별재판소를 통해 반인도적 범죄 및 중대한 전쟁범죄에 대한 사법 정의를 실현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법치주의 확산 노력에 개도국과 선진국의 입장 모두를 이해하는 한국의 가교 역할은 더욱 빛을 발했다. 일례로, ICC 로마규정 성안 당시 교착상태에 빠졌던 협상은 한국이 제안한 중재안으로 다시 활력을 찾기도 했다. ICC, ICTY, ICTR, ECCC 및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등 다양한 국제사법기구 및 국제법위원회 등 국제법 관련 회의체에서 우리 국민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국제사회의 법치주의 실행에 기여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인류는 위기 앞에서 각자 도생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체감했다. 동시에, 방역은 물론 위기 극복을 위한 제반 노력에 있어 규범과 다자주의의 중요성 또한 절감했다. 유엔가입 30주년을 맞은 한국은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법치주의 증진에 적극 기여하며, 단지 전쟁의 부재인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서로 조화와 번영을 이루는 '적극적 평화' 달성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유엔 가입 당시, 한국은 "유엔이 중심이 되어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다짐하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최우선 목표로 천명했다. 전쟁이 당연하던 시절 '부전조약'은 종이뿐인 약속으로 비춰졌을지 모르나, 시대를 넘어선 비전이 됐다. 인류가 평화를 통해 평화로 쉼 없이 나아가듯, 한국 또한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한반도 평화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평화로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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