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형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부전조약도 2차 세계대전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전쟁 중에도 평화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했다. 종전과 함께 설립된 유엔은 헌장에서부터 힘에 의한 강요보다 다자주의와 국제법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근대의 발명'인 평화 구축에 이바지했다. 유엔 창설 이후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음은 물론, 우리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전쟁의 불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의 법치주의 증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제형사정의 추구와 중대범죄 예방노력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유엔은 국제법위원회를 활용해 제노사이드 협약, 유엔해양법협약 성문화 및 국가책임 초안 채택 등 '국제법의 점진적 발달과 법전화'를 이끌고,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170건이 넘는 국제 분쟁을 해결해 왔다. 구유고?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Y, ICTR) 및 크메르루즈 전범재판소(ECCC) 등 특별재판소를 통해 반인도적 범죄 및 중대한 전쟁범죄에 대한 사법 정의를 실현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인류는 위기 앞에서 각자 도생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체감했다. 동시에, 방역은 물론 위기 극복을 위한 제반 노력에 있어 규범과 다자주의의 중요성 또한 절감했다. 유엔가입 30주년을 맞은 한국은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법치주의 증진에 적극 기여하며, 단지 전쟁의 부재인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서로 조화와 번영을 이루는 '적극적 평화' 달성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유엔 가입 당시, 한국은 "유엔이 중심이 되어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다짐하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최우선 목표로 천명했다. 전쟁이 당연하던 시절 '부전조약'은 종이뿐인 약속으로 비춰졌을지 모르나, 시대를 넘어선 비전이 됐다. 인류가 평화를 통해 평화로 쉼 없이 나아가듯, 한국 또한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한반도 평화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평화로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