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스파크랩 공동 대표/사진=스파크랩, KIST
고개를 갸웃한 투자심사역이 이력서 앞뒷장을 번갈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주눅 든 스타트업 창업주는 발음을 뭉개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인다. 곁에 있던 김호민 스파크랩 공동 대표가 대번에 알아보고 되묻는다. "실패하셨나요?".
지난 7일 홍릉 강소특구 창업학교(GRaND-K) 강연자로 나선 김 대표는 강단에 올라 '초기 창업자가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덕목'에 대해 얘기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실패한 전적이 투자를 받는 데 혹여라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노파심에서다.
김 대표는 "크래프톤의 펍지 스튜디오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도 16번째 게임까지 말아먹고 17번째 게임으로 성공한 것"이라며 "게임회사에서 대박 게임 하나를 내기 위해 평균적으로 6개 게임을 말아먹는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학 교수·총장 출신이다. 본인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의공학과 90학번으로 외화 전성시대에 '600만 달러의 사나이', '소머즈' 등을 보며 과학자를 꿈꿔왔다. 그는 "저도 자라서 교수가 될 줄 알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본격 강연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먼저 "젊은 시절 창업을 반지하사무실에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옛날엔 투자 계약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우선주와 보통주가 뭔지 제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무실이 공짜고, 팁스(TIPS)·엔젤매칭펀드 줄 테니 나가서 창업하라고 하는데 이건 정말 창업을 안 하면 나만 도태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도와 주려고 나서는 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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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꼽은 '내 인생 명대사'는 1993년 농구를 주제로 한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던진 '왼손은 거들 뿐'이다. 그는 이를 창업시장에 빗대어 "기술은 거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하우스(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에선 어떤 기술이 있나라고 묻지만, 우리는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며 "스타트업은 우리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지 기술을 개발하려고 생겨난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어 '누구를 위한 문제인가'도 고심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부분의 창업자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대상이 불명확해지는 폐단을 밟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넥슨에서 있었던 옛 일화를 소개했다. "후배가 2년간 밤낮을 설치며 만든 게임을 들고 와 해보라고 했는데 재미가 없었죠. 고생한 거 뻔히 아는데 그렇게 말하긴 어려워서 예의상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환호성을 치면서 좋아하는 거예요. '형이 좋아하면 안 돼, 형을 위해 만든 게 아니니까'라면서요. 그 게임이 바로 어린이들이 껌뻑 넘어가는 '메이플스토리'입니다."
무릇 다른 투자사들과 마찬가지로 김 대표도 최종으로 던지는 질문은 매한가지다. '진짜 하고 싶나'다. "게임회사들은 아직도 우스게 소리로 '라면 정신'이 있나 물어봐요. 넥슨 초창기엔 월급 엄청 적게 줬죠. 그래도 게임만 만들 수 있다면 라면만 먹어도 좋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라면 정신'이 이제막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창업자에게도 있는지, 그게 제 마지막 퀘스천입니다."
끝으로 김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준비할때)'원샷원킬'의 저격수를 꿈꾸지만 저희로부터 투자를 받은 대부분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하소연한다"며 그럴 땐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위로해 준다고 했다. "쉬우면 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