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창업 시 최우선 고려사항은 ? "기술도, 자금도 아닌 이것"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1.07.0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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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진 수젠텍 대표 홍릉창업학교서 강연..."시장 없으면 기술·자금도 무용지물"

손미진 수젠텍 대표/사진=KIST손미진 수젠텍 대표/사진=KIST


기술, 자금, 사람, 시장, 선택지 4개가 주어진다. 이 가운데 예비창업자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대다수가 기술 또는 자금을 최우선 순위로 꼽는다. 하지만 손미진 수젠텍 대표의 선택은 달랐다. 손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딥테크(Deep tech) 창업을 할 때 뭐가 중요한가 물어보는데, 일단 순서는 시장부터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하고자 하는 사업 분야가 앞으로 쇠퇴할 분야라면 아무리 좋은 사람과 자금이 들어와도 어렵다"며 "저희가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시장이 있어야만 하니 1번은 단연 시장"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홍릉 강소특구 창업학교(GRaND-K) 강연자로 나선 손 대표는 '수젠텍의 비상에는 이유가 있다'는 주제로 바이오 기술 분야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자신만의 경영 비법과 노하우를 소개했다. 2011년 12월 설립된 체외진단 전문기업 수젠텍은 코로나19(COVID-19) 신속진단키트를 발명해 50여 개국에 수출하면서 'K방역'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손 대표의 이력을 보면 '뼈속까지 연구자'다. 199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1997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초빙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99년 원 직장 복귀 대신 LG생명과학 입사를 택한다. 직장의 안정성을 놓고 볼 때 보통은 '기업→정부출연연구기관→대학' 순으로 밟는 데 손 대표는 정반대였다. 그는 "9년 정도 연구원으로 일하다 보니 '연구원의 끝은 뭘까'에 대한 고민을 진진하게 했었다"면서 "논문·특허 보다 저 나름대로 뭔가 더 남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창업을 결심한 건 LG생명과학기술원 입사 7년차 때. 당시 LG생명과학 뿐 아니라 국내 바이오 기업 대부분 신약 개발에 주력하던 시절이다. 손 대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진단팀 책임자로 근무했다. 그는 "회사의 주요 사업이 아니다 보니 우리 팀원들에게 비전을 줄 수 없었다"며 "사실 창업 전에 사업부 독립도 해봤는데 회사의 문화가 그렇다 보니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창업하겠다고 회사를 박 차고 나왔지만 막상 오랜 기간 머뭇거렸다는 손 대표. 본인과 뜻을 함께 하기로 한 팀원 4명은 창업을 약속만 한 채 뿔뿔이 헤어졌다. 왜 그랬을까. 그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시장이 너무 안 좋았다"며 "지나고 보니 그때 바로 창업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시장을 1순위로 꼽은 배경이다.

이후 5년이 흐른다. 조 대표는 창업 동료들에게 때가 됐음을 알렸다. 헬스케어 분야가 태동하고 성장하면서 손 대표가 파고든 진단 사업도 장밋빛, 꽃길 분위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수젠텍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특구 제 28호 연구소기업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당시 손 대표와 함께 창업을 준비하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자 한 분이 돌연 창업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연구원 창업은 준비에서 승인까지 약 6개월 정도 소요됐는데 그 사이 준비했던 첨단기술이 옛날 기술이 됐다는 거였다.


손 대표는 최근 들어 바이오 분야에서도 이런 경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기술 주기가 대략 8~10년인 바이오 시장이 한순간 바뀌는 장면을 목격한 탓이다. 손 대표는 "바이오 분야에서 흔치 않은 '게임체인저'라는 말이 등장한 건 이번 코로나19용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때문"이라며 "그간 다양한 종류의 백신 기술이 개발됐을 텐데 (mRNA 백신이)모든 것을 엎어버렸다"면서 이 상황은 바이오를 하는 CEO(최고경영자)들에겐 매우 도전적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손 대표는 '기술'을 꼽은 예비창업자들에게 "기술에 크게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 기술도, 남의 기술도 정말 빨리 변한다. 대신 새로운 기술을 들여오고 우리도 함께 변해가는 유연한 사고와 민첩함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빈틈없는 준비에서 자금력 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손 대표는 "그때그때 적소에 자금이 준비돼지 않으면 불안해진다"며 "제 경우, 최소한 회사에 50억 원은 있어야 하는데 그 이하로 떨어지면 멘탈이 흔들린다"고 했다.

손 대표는 "불편한 게 창업자 DNA(유전자)"라는 지론도 폈다. 그는 "2019년에 상장을 하고 나서 조금 편해지나 했더니 2020년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1년 반을 정말 죽음과 같은 세월을 보냈다"며 "지난 과정을 되돌아 보니 창업자는 지속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편안함에 익숙하면 그때는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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