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스 설립 '연구자 창업' 활성화…'돈되는 기술' 키우자"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1.06.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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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으로 직접 사업화 필요"

"홀딩스 설립 '연구자 창업' 활성화…'돈되는 기술' 키우자"


#"언제 팔릴지는 우리도 모르죠. '무용지물 특허'를 유지하는 데 예산을 너무 써 허리가 휠 정도입니다." 과학기술 분야 A연구소 한 TLO(기술 이전 사업화 전담조직) 직원의 하소연이다. 내년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이 30조원에 육박할 거란 전망이 나온 가운데 정작 그 결실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전 사업화 성적표는 초라하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과 함께 실효성에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남겨놓은 문재인 정부가 그간 산업에 쓰지 못한 채 서랍·창고에 켜켜히 쌓아 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미활용 특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R&D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연연 평가체계를 특허 출원 중심에서 기술 상용화로 전면 개편하고 창업을 통해 직접 사업화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7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 전체가 보유한 특허 수는 지난해 기준 4만4922건이다. 이중 기술 실시·양도·출자 등에 활용된 특허는 1만6410건으로 36.1%에 그친다. 나머지는 '활용을 추진 중'이지만 사실상 가능성은 희박한 특허가 2만4574건(53.7%), 미활용 특허가 4655건(10.2%)으로 파악됐다.

활용된 특허가 실제로 민간 기업 제품·서비스에 반영될지 여부도 미지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공공기술이 기업에 이전돼 실제로 매출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상기술료(매출 기반 약정기술료)를 들여다봐야 한다. 아직 공식 통계가 없는 실정이나 몇몇 TLO들이 출연연 IP(지적재산권)에서 나온 경상기술료 성과를 합산·추산해본 결과, 전체의 4% 아래였다. 한 관계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외부기관이 별도로 실시한 평가도 박하다. 대한변리사회가 '전문가 평가 기반 특허등급평가시스템'으로 국내 19개 출연연의 특허 384건을 분석한 결과, '우수'에 해당하는 특허는 1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장롱특허'라는 얘기다. 기술보증기금도 출연연 특허 중 기술성이 떨어져 보증지원대상에서 제외할 정도인 C등급 이하가 작년 기준 53.9%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특허는 많지만 '돈 되는 아이템'이 없다는 야유가 쏟아진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단기적 성과내기에 급급한 출연연의 관행과 특허 내용이 어찌됐든 그 수만 카운트해 '무늬만 특허'를 양산케 한 국가 R&D과제 성과관리시스템을 조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아울러 '창업'을 기술이전 사업화의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출연연 창업은 2001년부터 10년간 정체됐다가 최근 '제2 벤처붐'과 함께 증가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출연연 창업은 총 424개가 설립됐고 이중 현재 332개가 운영 중이다. 창업 유형으론 연구원 창업(66.5%)이 가장 많고, 연구소 기업(30.4%)이 뒤를 이었다.

해외 연구소에선 기술이전 사업화를 창업으로 푸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 대표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의 경우 '프라운호퍼벤처'를 통해 기술이전 프로젝트용 투자 전용펀드(FTTF)를 운영하고, '테크 브릿지'라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지원해 연구원 창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는 "일반 기술창업 아이템에 비해 출연연의 기술 성숙도가 낮고 사업모델을 찾기까지도 많은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다"며 △체계적인 창업지원시스템 구축 △전문 창업지원인력 확보 등을 통해 출연연 창업 활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경영기법 도입해 신속한 기술 사업화 필요특화펀드 조성도 제안

[유니콘팩토리 전문가 좌담회]연간 5조 투입, 1200억 회수 그쳐...홀딩스 설립 등 '연구자창업' 활성화 필요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변리사)/사진=이기범 기자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변리사)/사진=이기범 기자
1215억원, 연간 약 5조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작년 기술료 수입이다. 투입된 R&D(연구·개발) 비용의 2% 수준에 머문다. 장롱특허(미활용 국유특허)가 차고 넘치는 실정이다. '공공기술이전 사업화 촉진에 관한 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원인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시장지향형 연구성과 부족 △사업화 주체인 기업의 기술 수용성 부족과 사업화 역량 한계 △기술금융 등 초기 사업화 자금조달의 어려움 △기존 TLO(기술이전전담조직)의 기술마케팅 등 전문서비스 역량 미흡 등을 꼬집는다.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업계에선 공공연구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연구자 창업'을 활성화하자는 논의가 제2의 벤처붐과 맞물려 급물살을 타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최근 본사 회의실에서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변리사) 등 공공기술이전 사업화·창업과 관련된 정책·실무·투자·법무 전문가들을 초대해 '연구자 창업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출연연 기술이전 사업화 낙제점, 구조적·태생적 한계 진단
-사회=그간 출연연의 공공기술이전 사업화 성적이 저조했던 이유는.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사진=이기범 기자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사진=이기범 기자
▶윤기동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전략본부 박사(이하 윤 박사)=시장 수요와 미스매칭된 기술 양산, 기술 수용성과 사업화 역량이 미흡한 기업, 출연연 TLO(사업화전담부서)의 역량 한계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또 기술의 성숙도를 9단계로 나눴을 때 출연연은 평균 4단계 언저리의 기술이 많다. 기업은 7단계(파일럿), 8단계(데모), 9단계(상용화)에 이르는 기술이 필요한데 욕심을 내고 가져갈만한 기술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설령 기술료를 내고 가져갔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기술이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R&D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예산부족 등 결정적인 한계가 따른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본부 연구위원(이하 손 위원)=패스트팔로우(빠른 추격자) 시절, 공공 R&D기관의 역할은 R&D를 통해 선진국엔 있지만 국내엔 없는 기술을 국산화하는 등의 역할에 집중해왔다. 그러다 R&D 예산이 차츰 늘자 그 성과를 평가한다는 차원에서 특허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대학·출연연 등 공공 R&D를 하는 곳은 성적표 제출을 위한 특허를 기계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출연연의 태생 자체만 놓고 보면 기술 이전·사업화를 잘 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 기술 사업화는 도전적이고, 가다가 멈추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이 짧은 호흡으로 유연하게 이뤄져야 하는 데 공공의 영역에선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공공에서 창업을 얘기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너무 유행을 쫓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기술료 자문 보다 창업 관련 문의 쇄도 "드라마틱한 변화"
-사회=최근 기술이전 시장에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사진=이기범 기자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제도연구단 선임연구위원/사진=이기범 기자
▶윤 박사=기술 수요자인 대기업들이 CVC(기업형 벤처캐피털)나 톱티어(Top Tier) VC를 활용해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투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사업을 보완하거나 유망 벤처기업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새로운 미래 신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과거 중앙연구소를 통한 미래기술전략을 수립하고 신기술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방향에서, 이제는 벤처투자를 통해 신사업 진입을 꾀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출연연도 연구성과의 확산을 위한 방편으로 기존에 추진해온 기술이전을 통한 간접적 사업화 외에 직접적인 사업화 즉, 연구자 창업에 더욱 힘을 줄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이하 조 변호사)=지난 4~5년, 출연연에서 의뢰해온 법률자문 내용을 보면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앞서 기술이전에 따른 기술료에 대한 자문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엔 거의 창업과 관련한 문의가 더 많이 들어온다.

옛날엔 공들인 공공기술을 기업체에 이전 했을 때 일부 연구자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 지급액이 몇 억원 정도였다. 이마저도 대단한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들의 IPO(기업공개), M&A(인수·합병) 등 엑시트(투자금 회수) 성공사례를 보면 기업가치가 몇 백, 몇 천억원에서 조 단위 수준에 이르다 보니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기술이전보단 직접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민관 시너지 가교역할 할 홀딩스 설립해 민간투자펀드 확보
-사회=앞으로 공공기술이전 사업화를 효율적으로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손 위원=실제로 그동안 출연연이 기술사업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투자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게 아니었다. 일단 1차적으로 시장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기술이 될 수 있도록 후속 R&D와 실증, 국가R&D 사업 성과들을 융합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브릿지 연구 등을 정부가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조 변호사=현 시점에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기업 R&D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시장에 상품·서비스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업은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외부 기술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사고 팔고 하는 식으로 R&D 방향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러면 국내 기업들을 지원하는 출연연의 R&BD(사업화연계기술개발) 방식도 함께 바뀔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그때그때 파악하고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거다. 그러려면 창업을 매개로 시장과의 간격이 지금보다 더 가까워져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윤 박사=기술을 가장 잘 아는 연구원이 창업하거나 연구소기업 설립 등의 방법으로 민간의 투자를 받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이 연구개발로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출연연의 기술로 창업한 기업들이 성공을 이어간다면 기업과 투자자들의 관심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사회=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윤 박사=민간 부문의 경영기법을 도입해 출연연 보유기술을 신속히 사업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한데, 이를 촉진하기 위해 최근 '홀딩스' 설립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지주와 미래기술지주, 에트리(ETRI)홀딩스 등이 있지만, 개별 출연연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기술 공장'인 출연연을 '스타트업 공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사진=이기범 기자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사진=이기범 기자
김나경 리벤처스 대표이사(이하 김 대표)=출연연이 만드는 지주사 형태의 홀딩스는 사장되는 많은 기술들을 사업화해 수익화시킬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홀딩스가 정착하면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기가 이전보다 쉬워질 거다.

김 대표=요즈음 VC, PE(사모펀드), LLC(유한회사형 벤처캐피털), 신기사(신기술투자금융회사) 등을 살펴보면 투자의 앞단에서 정보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출연연에서 관련 정보들을 얻기란 여전히 어렵다. 때문에 이미 사업화나 창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수면 위로 보여지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

투자자들의 이런 변화에 따라 출연연도 같이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 홀딩스를 통해 기술을 좀더 노출시키는 거다. 투자자들이 투자하려는 방향을 파악하고 기술사업화를 조금 더 수월하게 이루기 위해 홀딩스 형태로의 변화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홀딩스와 민간 투자자 간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윤 박사=홀딩스와 민간 투자자들과의 활발한 정보교류와 함께 코지피(Co-GP·공동운용사)와 같은 형태로 펀드 결성이 가능해질 거다.

김 대표=실제로 리벤처스도 최근 에트리홀딩스와 코지피 형태를 통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고 있다. 에트리홀딩스는 민간과 함께 펀드를 조성하는게 처음이다. 이번에 좋은 성과를 얻어 향후 출연연 기술에 관심을 가진 민간투자자들이 대거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간투자 마중물 역할할 '출연연 기술창업지원특화펀드' 조성하자"
-사회=연구자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나 개선안이 있다면.

▶윤 박사=국내의 경우 공공기술 사업화가 주목적인 공공영역의 투자펀드가 미흡하다. 기술금융 공급의 전 주기를 놓고 볼 때, 민간 기술금융이 기술 창업 초기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건 사실상 어렵다. 공공기술 기반 창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초기 단계 특히, 기술창업-성장 과정에서 VC 등의 지분투자가 이뤄지기 전까지를 보완할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술 창업 기업이 소외되고 있는 영역, 즉 후속 민간 VC 투자 마중물 역할을 할 '출연연 기술창업 지원 특화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변리사)/사진=이기범 기자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변리사)/사진=이기범 기자
▶손 위원=민간 투자자의 자금 회수 리스크를 낮출 수 있도록 출연연 창업기술에 대한 상용화 R&D, 시장 검증, 사업화 자금을 지원사업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조 변호사=기술 스타트업을 성장시킨다고 할 때,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기술이나 지식재산권(IP)에 정통한 성장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투자금 확보와 연계된 쪽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더 많은 편이다. 이런 틈을 채워줄 성장 프로그램이 나왔으면 좋겠다.

▶김 대표=현재 기술 창업을 고려 중인 연구자들을 위해 작게나마 펀드를 계획하고 있다. 펀드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전과 충청 인근 법인들을 대상으로 기술투자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함께 할 우군을 모으고 있다. '우리도 한 번 대전을 창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 대전 대표 기업들이 공감하고 있고 작게나마 흔쾌히 참여의사를 밝히는 기업들이 있다.

-사회=지역 법인들의 호응도가 높은 이유가 뭔가.

▶김 대표=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펀드 출자가 자금력 있는 상장기업들의 수익 창출 또는 인수합병을 위한 또다른 투자수단이었다면 최근에는 지역사회문제에 함께 공감하면서 이를 해결할 기술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초기 기술 창업기업에 대한 시드 투자를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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