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선박 10척 중 8척 싹쓸이..韓 조선, 다시 세계 최고가 되다

머니투데이 장덕진 기자 2021.05.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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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新조선 열전- '친환경한 자'가 이긴다①

편집자주 한국 조선 산업이 업황 개선과 함께 다시 세계 시장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한때 중국에 내줬던 글로벌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 세계 조선 산업을 지배하는 친환경 트렌드를 진단하고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과 미래를 조망해본다.

친환경 선박 10척 중 8척 싹쓸이..韓 조선, 다시 세계 최고가 되다


친환경 선박으로 무장한 한국 조선 산업이 다시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 선박에 사용되는 연료, 배출 가스 등 친환경 규제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일찌감치 친환경 선박에 투자해온 한국 조선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다. 탄소중립 목표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 선박 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전망도 밝다.

한국 조선업계는 올해 1분기 562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규모의 선박을 수주해 중국 540만CGT를 제치고 1위 자리를 수성했다. LNG(액화천연가스) 선박과 LPG(액화석유가스)선박 등 친환경 선박들을 싹쓸이 한 덕분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조선 3사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LNG선박 총 52척(430만CGT) 가운데 36척(308만CGT)를 수주했다. 올해 4월까지 수주 실적도 글로벌 총 발주 9척 가운데 7척을 수주해 78%를 점유했다. LPG선박의 경우엔 지난해 38척(70만CGT) 가운데 14척(27만CGT)을 이들 3사가 수주했고, 올들어 4월까지 38척(97만CGT)를 수주해 점유율을 74.5%까지 끌어올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LPG는 기존 화석 연료 대비 친환경적이고 수소, 암모니아 선박이 상용화 되기 이전 중간 단계 연료"라며 "친환경 규제에 맞춰 발주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선박을 앞세운 한국 조선업계는 2018년 중국을 앞질러 세계 조선업계 1위를 탈환했다. 한국의 수주실적은 2016년 224만CGT, 2017년 792만CGT를 기록해 각각 502만CGT와 1259만CGT를 기록한 중국에 뒤쳐졌다. 하지만 2018년 전세계 LNG선 발주 72척 가운데 66척을 독식하며 연간 실적 1341만CGT로 1082만CGT의 중국을 제쳤다. 지난해에도 한국 조선업계는 4분기 총 LNG선 발주 31척 가운데 30척을 수주하는 뒷심을 발휘해 글로벌 1위를 지켰다.



LNG선박 확대 발맞춰 전략적 선택...관련 기술 개발도 박차
한국 조선업계는 일본이 점유하고 있던 LNG선박 시장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업체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1990년대 LNG선박 발주는 총 44척으로 일본 조선업계는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수주한 강자였다. 당시 일본은 모스타입의 LNG화물창 기술을 기반으로 수주 시장에서 앞서갔다. 대신 한국은 차별화를 위해 멤브레인 타입을 선택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같은 모스타입으로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는 낫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말했다. LNG선박은 영하 162℃의 극저온 LNG를 운송하기 위한 화물창의 유형에 따라 모스 타입과 멤브레인 타입으로 나뉜다. 모스 타입은 갑판 위에 둥근 화물탱크를 설치한 형태지만 멤브레인 타입은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화한 유형이다.

멤브레인 타입은 모스 타입 대비 적재 공간이 40% 가량 넓고 일체화된 화물창으로 인해 구조적 안정성이 높다는 점에서 선주들의 선택을 받았다. 결국 2000년대 230척으로 급증한 LNG선박 시장에서 한국은 멤브레인 타입 기술을 바탕으로 155척을 쓸어담았다. 시장 점유율은 67%로 급등해 일본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한국 조선업계는 기술 격차로 경쟁력을 유지했다. 대표적인 기술은 연료공급시스템과 재액화시스템이다. 연료공급시스템은 액체 상태의 LNG를 추진장치에 투입할 수 있도록 압력과 온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대우조선해양이 2008년 기술 개발에 돌입해 2013년 상용화에 성공한 연료공급시스템 HiVAR 등 국내 조선 3사는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해 선박 건조에 활용하고 있다.

재액화시스템은 화물창에서 증발하는 LNG 증발가스를 다시 액화해 손실을 없애는 기술이다. LNG를 운반하는 입장에서는 증발하는 LNG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한국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 SMR ▲대우조선해양 PRS ▲삼성중공업 엑스-렐리(X-Reli) 등 독자적인 재액화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재액화시스템으로 운송 효율을 높인 한국 조선업계는 LNG선박 시장에서 기술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시장 진입 이후 시기마다 선제적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해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중국과 일본 대비 기술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 수주전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선박도 피할 수 없는 탈탄소 흐름...한국엔 기회
선박으로 인한 안전, 해양오염 방지를 책임지는 UN의 전문기구인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의 탈탄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NG 선박 등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갖춘 한국 조선업계 입장에선 환경 규제가 반가운 상황이다.

선박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2.5%(연간 약 10억톤)를 차지한다. IMO는 2050년까지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의 70% 이하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규제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한 중간 단계로 2030년까지 40% 저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친환경 규제로 선주들은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친환경 선박을 선택해야 한다. 클락슨리서치는 지난 4월 IMO규제 등으로 올해 54척에 이를 LNG운반선 발주가 2022년에는 73척으로 증가하고 2031년까지 연평균 60척 이상 견조한 발주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계에서 LNG선박 발주 능력을 갖춘 건 한중일 3국 정도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납기 지연, 품질 문제 등이 제기돼고 일본은 조선업이 불황을 겪은 뒤 회복에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한국이 기술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중국의 후둥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선 글래드스톤호가 엔진 고장으로 해상에서 멈춰선 사건은 기술 차이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한국 조선업계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친환경 시장의 기회를 포착한 셈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주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건조 기술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중국 대비 가격 프리미엄을 주고도 한국에 발주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는 향후 기술격차 유지에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이다. 조선 3사가 매년 투입해온 연구개발비용은 ▲2018년 1851억원 ▲2019년 2018억원 ▲2020년 2048억원이다. 최근 조선경기 불황에도 2000억원 가까이 연구개발에 투자해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기술력과 건조이력 등을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다"며 "기술격차를 꾸준히 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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