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대응이 입장"…美·中 사이 낀 삼성, 그걸 지켜보는 정부

머니투데이 세종=안재용 기자 2021.04.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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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황 면밀히 보고있다"…전문가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후방지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기 전에 반도체 칩을 들고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기 전에 반도체 칩을 들고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백악관이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부족을 논의하는 자리에 삼성전자를 초청한 것을 두고 정부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반도체 밸류체인(공급사슬)에서 탈(脫)중국을 꾀하는 게 미국의 의도인데, 한국 입장에선 동맹국 미국과 최대교역국 중국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들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정부로선 적극적 개입을 자제하고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에 대응을 맡기는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으로 삼성전자 부른 美정부
5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즈 국가경제위원회(NEC)위원장 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오는 12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과 만나 반도체 품귀현상에 대해 논의한다. 해당 자리에는 삼성전자와 제너럴모터스(GM), 글로벌파운드리 등이 초대됐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에 추가적인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하는 공급 국내화가 꼭 미국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가안보보좌관까지 회의에 참석한다는 점은 미국이 이 문제를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반도체 산업 밸류체인에서 중국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의 신뢰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 '잘 해줄것이라 믿는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에는 (미국에) 투자해줘서 고맙고 투자를 더 늘려달라는 수준의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적극적 개입 '부적절'…"상황 면밀히 지켜보겠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매출 61조원, 영업이익 9조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한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샵을 찾은 시민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매출 61조원, 영업이익 9조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한 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샵을 찾은 시민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정부는 일단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기 보다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미중 양측에 좋지 못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개별기업과 논의하는 것에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정부는 일단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인 대응을 내놓지 않는 것도 하나의 입장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놔둬야"
전문가들도 미중갈등 국면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기업 자율에 맡긴 채 후방지원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기업 스스로 문제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나서 이지선다를 강요받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너무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며 "(미중갈등은) 기업들에게 생존의 문제라 고민 자체도 정부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너무 개입하지 말고, 기업이 고려하기 어려운 외교적 측면에서 의사결정을 서포트해 주는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문 연구위원도 "정부가 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며 "정부가 불필요한 개입을 하지 않는게 더 좋은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문 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과 협력을 하며 중국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시장, 향후 30년 세계패권 좌우할 전장
(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미 행정부는 반도체 밸류체인 문제를 향후 30년 세계 패권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 5G(5세대) 통신과 AI(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이 이미 미국을 근소하게 앞선 상황에서 클라우드와 3D컴퓨팅, 자율주행 등의 핵심부품이 되는 반도체 산업마저 내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인공지능의 최상단 아이디어와 기술은 미국이 앞서있지만 데이터를 통한 구현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 중국이 미국을 제친 상황"이라며 "5G도 중국이 앞서나가는 상황에서 차세대 하이테크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중국도 그 사실을 알고 쌍순환 전략 등을 세우며 풍부한 자본을 활용해 M&A(인수합병)에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연구위원은 "중국도 반도체 홀로서기를 해야하는데 핵심기술을 모두 미국이 보유하고 있어 쉽지 않다"며 "다만 미국도 중국을 견제한다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상황에서 완전 배제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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