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K유니콘 엑소더스"…벤처업계 "복수의결권 도입 시급"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2021.03.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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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복수의결권-정치에 발목 잡힌 '유니콘'의 꿈 ③

편집자주 벤처·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 우려를 덜어 경영과 기술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게 돕는 복수의결권 제도의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벤처업계에서는 글로벌 벤처 강국이 대부분 도입한 복수의결권 제도의 국내 도입이 늦어질 경우 지난해 코로나19(COVID-19)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상최대 투자 규모를 기록하며 경기회복을 이끈 '제2의 벤처붐'이 꺼질까 노심초사 하고있다.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 도입에 따른 명암을 알아본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규제혁신추진단 현장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2021.3.16/뉴스1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16일 서울 용산구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규제혁신추진단 현장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2021.3.16/뉴스1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궈서야 되겠어요?'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허용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벤처·투자업계의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고성장 벤처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아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벤처투자가 사상 최고 수준인 4조원을 훌쩍 넘긴 상황에서 창업주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복수의결권의 허용 여부에 따라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들의 '코리아 엑소서스'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미국 뉴욕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의 김범석 의장도 미국행을 선택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복수의결권을 꼽았다. 쿠팡에 이어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 등 벤처·스타트업들도 이런 이유들로 미국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투자업계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 처리' 한 목소리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2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의 국회 통과를 서둘러 달라며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세계 주요 증권거래소에서는 모두 복수의결권 제도가 허용된 반면 국내만 제한한 탓에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 입법과정에 있다"며 "이 법이 시행되면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어 벤처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아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회는 벤처기업협회와 이노비즈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인공지능협회, 한국핀테크산업협회, IT여성기업인협회 등 16개 단체로 구성됐다.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은 국내 투자·회수시장의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협의회는 "글로벌 벤처 강국인 미국과 중국, 런던·뉴욕·나스닥·독일·도쿄 등 세계 5대 증권거래소 모두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혁신기업의 상장을 유도하며 디지털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상법·한국거래소 상장규정 모두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 글로벌 경쟁에 뒤쳐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재벌 대기업의 세습수단 악용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 계류중인 법안에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이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에 상정된 도입방안에는 이러한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며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향후 복수의결권이 재벌 대기업의 세습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복수의결권 요건…10년 기간 제한·상장 시 보통주 전환
업계에서는 복수의결권 허용안의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적용 대상·요건·기간 등 세부적인 제한 조치들이 너무 엄격하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범위가 한정된다. 보유 대상도 창업주이면서 최대주주(지분 30% 이상)로 현재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 상속·양도, 사임 시 해당 주식은 보통주로 전환(일신전속)된다. 존속기간은 최대 10년으로 제한되고, 상장 후에는 남은 기간에 상관없이 보통주로 전환된다. 다만 상장 시에는 3년간 전환 유예기간을 부여한다. 또 대기업 등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될 경우에도 보통주로 바뀐다.

미국, 중국 등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해외 국가에서는 상장 여부에 따른 제한 조항은 두지 않았다.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이나 페이스북 등은 물론 최근 5년 새 상장한 기술기업 10곳 중 3~4곳(35.8%)이 복수의결권 구조를 갖고 있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A주의 의결권이 보통주(B주) 대비 1만배로 설정돼 있을 정도다.

국내외 스타트업 100여곳을 발굴·육성해 온 한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 대표는 "복수의결권은 자율주행차, 로봇, 플랫폼 등 대규모 설비·기술투자가 필요한 업종의 기업에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라며 "실제로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한 시점에서 지분 희석을 걱정해 투자를 안 받거나 유예하는 일들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국내 한 중견벤처캐피탈(VC) 대표도 "표면적으로만 보면 복수의결권이 오히려 투자 저해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국내 벤처생태계에서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며 "국내 벤처는 창업자나 소수 창업팀의 역량이 회사의 핵심경쟁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정 단계 이상까지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지켜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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