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주사기' 쾌거 뒤엔 삼성이…아이디어 들고 대표 설득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21.02.1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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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백신주사기 생산 현장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해 일반 주사기와 LDS 백신주사기 비교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백신주사기 생산 현장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해 일반 주사기와 LDS 백신주사기 비교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7일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이른바 쥐어짜는 K-주사기의 탄생 뒤엔 숨은 공신 삼성이 있었다. 아이디어부터 제조 중소기업 발굴, 국내외 승인 절차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관련 계열사를 총동원해 도왔다. 지난해 3월 마스크 대란 당시 그룹의 인맥을 활용해 53톤의 원료를 들여온 데 이어 또 한번 키다리 아저씨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공을 알리길 꺼려했다. 처음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언론플레이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후엔 문재인 대통령이 주사기 공장을 방문하며 축하하는 데 자칫 스폿라이트를 빼앗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백신 20% 증산효과…삼성의 아이디어
LDS(최소잔량주사) 주사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제약업계 시장을 주시하던 삼성에서 나왔다. LDS 주사기는 주사 잔량이 84㎕(마이크로리터) 이상 남는 일반 주사기와 달리 4㎕ 정도만 남는 게 특징이다. 일반 주사기로 코로나19 백신 1병을 5차례 투여할 수 있는데 풍림파마텍 LDS 주사기는 6차례 투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백신을 20% 증산하는 효과가 있다.

계열사간 회의에서 LDS 주사기의 필요성을 공유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에 적합한 업체로 풍림파마텍을 찾아냈다. 삼성은 중기부와 함께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를 만나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당했다. 대기업과의 협업 경험이 부족한 조 대표가 기술탈취를 염려한 탓이다.



이에 박영선 전 장관과 민간사업가 출신의 차정훈 중기부 벤처혁신정책실장이 조 대표를 찾아 "정부를 믿고 삼성의 지원을 받으라"며 삼고초려했다. 조희민 대표의 딸인 조미희 풍림파마텍 부사장도 "정부와 삼성을 믿어보자"고 설득한 끝에 조 대표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부터 바이오계열사까지 총동원
풍림파마텍 직원이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백신주사기 생산 현장인 풍림파마텍 LDS 백신주사기 생산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풍림파마텍 직원이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백신주사기 생산 현장인 풍림파마텍 LDS 백신주사기 생산라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기부와 삼성전자는 풍림파마텍이 LDS주사기 양산 체제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 중기부는 스마트공장 전용대출 프로그램과 방역물품 패스트트랙 등 행정·자금 지원을 했다. 삼성전자는 30여명의 제조 전문가를 파견해 풍림파마텍 주사기 라인의 생산성을 5배 향상시켰으며 주사기 자동조립 설비를 지원했다.

이후 국내외 정부기관으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 공신력을 얻는 일이 남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풍림파마텍의 서류작업과 인허가 절차 등을 지원해 우선 지난달 15일 식약처 승인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18일 FDA에 승인신청을 한 뒤 이달 17일 승인을 받기까지 전 과정에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있었다. 까다로운 미국 통관 절차 등에 관련된 방대한 양의 서류도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업체들과 맺어놓은 네트워크를 통해 힘써 FDA의 주사기 긴급사용 승인이 비교적 빨리 나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화이자 백신 일부 물량이 조기에 국내 도입되도록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풍림파마텍 LDS 주사기가 FDA 긴급사용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일부 물량을 화이자에 납품하는 조건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히 지원하는 키다리 아저씨의 속사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삼성은 LDS 주사기 개발 과정에 개입한 것을 알리길 원치 않는 모양새다. 삼성 관계자는 "정부와 중소기업, 삼성이 함께 협력한 것일 뿐"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정부 발표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자칫 '언론플레이'로 비칠 것을 우려한 삼성이 지원사실 공개를 극도로 꺼린다고 보고 있다.

다만 삼성은 지난달 18일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나온 이후에도 LDS 주사기의 FDA 승인을 위한 지원을 이어갔다. 중기부 관계자는 "삼성이 국익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별도의 댓가를 바라지 않고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풍림파마텍 전북 군산 공장을 방문해 주사기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풍림파마텍은 다음달 월 2000만개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하고 국내외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삼성은 최소잔여형 주사기 수요가 늘어날 것을 먼저 예측했고, 풍림파마텍의 기술력을 인정해 생산라인의 자동화와 금형기술을 지원하는 등 전방위적인 협력으로 우수한 제품의 양산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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