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서산대사 휴정은 우리나라 대표적 네 산을 평하여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秀而不壯),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않으며(壯而不秀), 구월산은 장엄하지도 수려하지도 못하고(不壯不秀), 묘향산은 장엄하면서도 수려하다(亦壯亦秀)"고 하며 묘향산을 조선 4대 명산의 으뜸으로 꼽았다. 휴정 스스로가 묘향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기도 했다.
만폭동 계곡에서 본 묘향산. 이 계곡길을 더 오르면 단군의 전설이 전해오는 단군대와 단군사(檀君祠, 단군굴)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묘향산에는 7세기경부터 사찰들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그 중 대표적인 사찰이 보현사다(국보유적 제40호). 현재 보현사 경내에 남아 있는 보현사비의 기록에 따르면 1028년(현종 19) 승려 탐밀(探密)이 묘향산에 안심사라는 절을 세웠고, 그의 조카이자 제자인 굉확(宏廓)이 1042년(정종 8) 243칸 규모의 보현사를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또 다른 기록에는 968년 안심사가 창건됐고, 굉확법사가 982년(성종 1)에 보현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평양-향산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청천강의 상류.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는 5만여 평방미터의 부지에 남북 축으로 1전(대웅전)-2탑-1루(만세루)-3문(조계문·해탈문·천왕문)의 형식을 갖추고 동서 축으로 만수각, 관음전, 영산전과 수충사, 팔만대장경보존고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경내에 다라니석당과 종각이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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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보현사 해설강사가 ‘묘향산문화유적안내도’ 앞에서 보현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해탈문과 천왕문. 조계문부터 대웅전까지 전각들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조계문. 관서지방의 사찰을 모두 관장하는 지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관서총림규정문(關西叢林糾正門)’이란 편액을 걸려 있다.(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그중 보현사비(국보유적 제144호)는 보현사의 연혁을 기술한 사적비로 1141년(고려 인종 19)에 세웠다. 높이 2.45m, 너비 1.1m, 두께 0.12m이다. 비신 앞면 윗부분에 인종의 글씨로 새긴 '묘향산보현사지기'(妙香山普賢寺之記)라는 제액이 있고, 그 아랫부분과 뒷면에 보현사의 내력을 적은 1200여 자의 비문이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이 짓고, 문공유(文公裕)가 썼다.
보현사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비석들. 조계문과 해탈문 사이에 모아져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2007년 5월 보현사 해설강사가 보현사비(普賢寺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현사의 내력을 기록한 보현사비는 1141년에 세워졌으며, 김부식(金富軾)이 내용을 썼다.(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해탈문에서 본 천왕문.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천왕문에서 본 보현사 4각9층탑과 만세루. 만세루는 6.25전쟁 때 파괴돼 1979년에 복원됐고, 4각9층탑은 1962년에 복구됐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천왕문의 천장과 사천왕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8각으로 된 매층 옥개석은 각각 2단씩의 옥개받침이 있고 추녀 끝마다 풍경이 104개 달려 있다. 80개의 풍경이 달려 있는 오대산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을 연상시킨다. 이곳의 김영숙 해설강사가 믿기 어려운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보현사는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킨 장소로 유명하단 말입니다. 하루는 서산대사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석가탑(8각13층탑)의 방울들이 '왜란 왜란 왜란'하고 울려 잠을 깼더란 말입니다. 종소리에 왜적들이 쳐들어온 것을 알게 되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 승의병을 조직해 평양성 전투를 진두지휘하고 승리로 이끌었단 말입니다. 보현사의 종은 역사적인 순간에 울려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답니다."
보현사 대웅전과 8각13층탑. 대웅전은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76년에 복원한 것이고, 8각13층탑은 1962년에 보수됐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일제강점기 때 보현사 대웅전과 8각13층탑. 보현사에는 원래 24채의 전각이 있었데, 6.25전쟁 때 관음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탔다. 8각13층탑의 상륜부도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대웅전의 오른쪽에 관음전(국보유적 제57호)이 있다. 관음전은 조선 초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1894년에 고쳐지었다. 6·25전쟁 때도 파괴되지 않아 현재 보현사의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 건물은 큰 부엌 칸과 여러 개의 온돌방이 덧붙어있어 주로 승려들이 생활하던 곳으로 보인다.
보현사 관음전. 조선 초기에 중건한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영산전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보현사 영산전 편액과 내부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서산대사와 사명당, 처영의 영정을 모신 수충사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팔만대장경의 인쇄본과 경전들이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보관고 외부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평안북도 평천군 불정사터에서 옮겨 온 성동리다리니석당. 고려 초기의 건축술과 조형미를 보여주는 독특한 형태의 석탑 중 하나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금강산 유점사에서 옮겨온 유점사(楡岾寺) 동종(銅鐘)과 종각 전경. 1729년에 다시 주조된 동종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
2003년 8월 직장, 학교별로 보현사를 방문해 대웅전을 둘러보고 있는 북한 참관객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8.©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