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찬스’ 못지않은 능력주의의 ‘함정’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20.11.07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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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엘리트 세습’…중산층 일자리 빼앗는 소수 엘리트들의 새로운 귀족주의

‘부모찬스’ 못지않은 능력주의의 ‘함정’


거의 모든 선진 사회에서 귀족 제도(aristocracy)는 물러나고 능력주의(meritocracy)가 부상하고 있다. 실력에 따라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아닌 곳은 ‘부모 찬스’에 기대어 얻은 성과라는 오명으로 도덕적인 상처까지 입는다.

엘리트 부모가 자녀들의 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능력’을 대물림 수준으로 키워낸다는 사실에도 능력주의는 공격받지 않는다. 엘리트들은 이제 물리적 자산을 상속하기보다 인적 자본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유산을 물려준다.



이는 중산층 이하에서는 따라갈 수 없는 격차다. 하버드와 예일 대학에는 소득분포상 상위 1%에 속하는 가구 출신이 하위 50% 가구 출신보다 더 많이 재학하고 있다. 한국은 예외일까.

능력주의는 부와 특권의 집중과 세습을 대대손손 유지하는 숨은 메커니즘이자 계층 간 원한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침묵의 도화선이다.



이 새로운 귀족주의는 다음 세대에서 특권을 끊임없이 다시 구축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무릅써야 하지만, 넉넉한 자금과 차별화한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탁월하다.

능력주의는 구직 과정에서도 사회의 격차를 심화한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높은 기술력으로 노동생산력을 독점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괜찮은 일자리의 중산층은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소수 엘리트가 수천 명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것이다.

또 능력주의는 명문대, 로스쿨, 금융가, IT산업을 엘리트끼리 야망을 겨루는 격전지로 만들고 시민 대다수를 사회 주변부로 몰아낸다.


저자는 “오늘날 능력주의는 엘리트와 중산층을 갈라놓고 있다”며 “복잡해진 금융상품과 우리의 주의를 뺏는 IT 기술의 공익은 분명치 않으며 중산층 수백 명의 몫이 소수 엘리트에게 돌아갔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엘리트 세습=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세종서적 펴냄. 504쪽/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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