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졸속논의, 공정위는 입장번복…삼성마저 지주사 포기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2020.10.1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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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일방통행 기로에 선 재계]<2>공정거래법 개정안 논란

편집자주 정부와 정치권이 '공정경제' 명분을 앞세워 그간 기업이 반대해온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강행에 나섰다. 재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점검하고 대안과 함께 기업 활성화를 위한 추가 입법사항을 찾아본다.

DJ·盧정부 독려한 '지주사'…삼성이 3년 전 포기한 까닭
국회는 졸속논의, 공정위는 입장번복…삼성마저 지주사 포기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중략)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기로 했다. 향후에도 지주사 전환 계획이 없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지주사 역차별 논란이 커지면서 3년 전 삼성전자 (77,600원 ▼400 -0.51%)가 지주사 전환 백지화를 발표할 때 내놓은 입장문이 다시 회자된다. 재계와 학계에서 주목하는 문구는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건의 법 개정 추진'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강화 움직임이 법안 시행 전에 이미 기업의 지주사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 사례다.



정부가 그동안 '투명한 지배구조'를 이유로 대기업의 지주사 체제 전환을 장려해놓고 절대 과반의 국회 의석수를 앞세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정책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40년만의 첫 개정…사회적 비용 외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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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1980년 법 제정 이후 전부개정'이라고 부를 만큼 대대적인 개편 계획이 담겼다. 지주사가 의무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을 상장사의 경우 20%에서 30%로, 비상장사는 40%에서 50%로 높이는 방안이 골자다.

사익편취, 이른바 내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총수 일가 보유지분이 30% 이상인 회사에서 20% 이상인 회사로 넓히고 현재 공정위가 전담하는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방안도 담겼다.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도 추진한다.


3년 전 삼성전자의 이사회 결정에서 드러나듯 재계에서는 지주사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규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아직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기업 입장에서는 높아지는 문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주사 전환시 의무보유 지분율 상향에 따른 자금 부담이 지난해 기준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금융그룹 제외·상장사 한정) 가운데 16개 비지주사 기업집단만 합해도 31조원에 달한다. 이 비용을 전부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24만4000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규모다.

◇ "지주사 독려할 땐 언제고"…기업 숨통 턱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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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제도는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등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김대중 정부가 허용하고 노무현 정부가 장려한 제도다. 지배구조가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LG (77,100원 ▼700 -0.90%)그룹을 비롯해 SK (160,500원 ▼1,500 -0.93%)·롯데·GS (43,150원 ▼850 -1.93%)·현대중공업·한진 (20,900원 ▲150 +0.72%)·CJ (127,300원 ▼2,200 -1.70%)·LS (129,600원 ▼5,700 -4.21%)·효성 (59,500원 ▼500 -0.83%) 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사 전환을 백지화한 삼성그룹을 비롯해 현대기아차그룹 등 지난해 기준으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59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36개는 지주사 전환 전이다.

4대 그룹 한 인사는 "정부가 말로는 지주사 체제 전환을 독려하면서 실제 규제는 지주사 전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강화하면 어느 기업이 선뜻 지주사 전환을 결정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다른 그룹 인사는 "당근을 줘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지주사로 전환하기 쉽지 않은 기업이 수두룩한데 규제를 늘리는 것은 기업의 숨통을 조르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 고발 남발 우려…대기업보다 중기가 더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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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선 중소기업에서 더 큰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 형편상 법무팀이나 담당 직원을 따로 두기 어려운 만큼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회사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염려가 크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은 법무팀이나 법률 전문가가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해 수사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려면 중소기업에 법률 전문가를 지원할 수 있는 안전망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 당시 논의에서도 이런 문제가 지적됐다. 2018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속고발제를 폐지할 경우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에 더 많은 형사처벌이 이뤄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경총 관계자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무분별한 고소·고발, 공정위와 검찰의 중복조사 등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비용 증가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 내부거래 기준 다듬어야…"이대론 대주주 경영 포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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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쟁 보장과 부의 편중화 방지라는 측면에서 내부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재계에서도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부당한 내부거래의 모호한 기준을 정부가 보다 구체화한 데 대해서도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부당 내부거래의 기준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나 '상당한' 규모의 거래 등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정상가격과 차이가 7%를 넘거나 당사자간 연간 거래총액이 200억원 이상이고 매출의 12%를 넘어서는 거래로 구체화했다.

재계는 다만 지주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일반기업보다 높아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정위의 지적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주사는 내부 자원을 공유하는 등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만큼 지주사 체제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이 현행 209개사에서 595개사로 늘어난다. 삼성생명 (83,800원 ▼1,000 -1.18%)·현대글로비스 (183,300원 ▼1,100 -0.60%)·KCC건설 (4,595원 ▼20 -0.43%)·넷마블 (56,600원 ▼700 -1.22%)·GS건설 (16,080원 ▼70 -0.43%)·㈜LG·SK㈜ 등이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대주주의 보유지분은 낮추게 하면서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높이기 위해 돈을 더 쓰라고 하는 셈"이라며 "대주주 중심의 경영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리니언시 도왔더니 다른걸 털리네' 전속고발권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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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전속고발권제도 폐지에 대해 이전 정부에서 "전면 폐지는 부적절하다"고 일관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법 체계를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을 놓고 공정위의 철학이 달라진 것이다.

공정위의 입장 변경 이면엔 힘이 약해진 전속고발권이 있다. 전속고발권은 기업의 담합 등 사건에 대해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업 사건에 있어 공정위의 경쟁자인 검찰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통해 공정위의 영역을 보호해 준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시행되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공정위와 별개로 담합사건을 수사·기소했다. 공정위로서는 검찰에 대항해 이를 지키느라 힘을 빼느니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협력하자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

검찰과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놓고 힘겨루기 한 이유를 놓고 재계는 전속고발권 뒤에 숨겨진 리니언시(자진신고감경제)제도에 주목한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자수하면 과징금·검찰고발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공정위 담합사건의 대부분이 리니언시를 통해 적발된다. 그리고 리니언시는 대부분 담합 사실 뿐 아니라 알짜배기 기업정보를 함께 달고온다.

지난 2018년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전속고발제 폐지에 합의할 당시 양 기관은 '리니언시 정보를 공정위는 검찰과 실시간 공유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합의도 발효돼 검찰의 숙원이 해결된다.

공정위로서는 어차피 놓칠 전속고발권이라는 집토끼를 포기하는 대신 검찰과 정보를 공유하며 리니언시의 영향력을 유지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재계는 전속고발제 폐지로 리니언시 제도까지 달라지는 상황에서 적잖은 혼란을 우려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담합 등 불법행위 말고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발가벗겨질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기업 고위 관계자는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과징금 면제는 공정위가, 형사처벌 면제는 검찰이 결정하는 구조가 된다"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감시구조가 매우 복잡해지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알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전속고발권 폐지를 놓고 정권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공정위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높다. 공정위는 앞서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중소기업이 고발에 노출되면서 약영향이 커질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서는 민사와 형사를 전반적으로 검토해 종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경제생태계를 관리감독하는 정부기관이 정권이나 기관장이 바뀔때마다 기준을 바꾸고 있다"며 "경제생태계에 참여한 수많은 기업이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우경희 기자

2년간 논의 한번 없더니…지배구조·거래관행 뒤집는데 졸속입법?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경총과의 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hwijpg@mt.co.kr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경총과의 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email protected]
"다수 발의되고 있는 기업 규제 관련 법안 가운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특히 큰 상황입니다."

최근 잇따라 국회를 찾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재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법안 처리가 강행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같이 호소했다.

큰 틀에서 "기업규모나 총수일가 영향력 등 힘의 논리에 의해 시장의 경쟁과 거래관행이 왜곡되는 것을 시정한다는 취지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힌 윤희국 국민의힘 의원도 "속전속결로 통과시키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다양한 조항과 쟁점을 가진 법안들에 대해 간단히 찬반 입장을 가지기는 어렵다"면서 "기업의 경영활동이 심각하게 저해된다는 경영계의 걱정 역시 중요한 고려사항"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을 만든 정부·여당은 여전히 주요 쟁점의 조항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고압적인 태도"라면서 "한마디로 '답정너'"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거래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공정거래법의 경우 과거 2018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됐지만 2년 가까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도 안건 목록에 포함됐지만 한 차례 논의도 하지 못하고 법안 심사가 끝났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여당을 중심으로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국회 처리가 속도를 내면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졸속 입법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지만 심도 있는 토론의 과정은 실종된 상황"이라며 "이달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논의 없이 11월에 법안 처리가 허무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정부와 여당이 국회 통과를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1980년 법 제정 후 첫 전부개정’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대적 개편 계획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가 의무 보유해야 할 자·손자회사 지분율을 기존 20%에서 30%(상장사 기준, 비상장사는 40→50%)로 높이기로 했다. 아울러 사익편취 규제 대상을 상장사·비상장사 구분 없이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로 일원화하고 이들이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키로 했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대주주에게 매우 큰 경영부담을 안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법안 보류를 정치권에 요청한 상태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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