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아쉽게 놓친 현택환 교수 "국민적 관심이 큰 성과"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10.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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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환 교수/사진=뉴시스현택환 교수/사진=뉴시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나노 연구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가 더 늘어나 동료연구자나 후배들이 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7일 노벨화학상 유려 후보로 거론됐다 아쉽게 불발된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이번처럼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 “(노벨화학상을)받든 안 받는 나노 과학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제겐 큰 성과이며, 후배들 중에 저보다 훨씬 뛰어난 연구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석좌교수/사진=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석좌교수/사진=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현 교수는 앞서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해온 글로벌 학술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올해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로 그의 이름을 올려 수상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현 교수는 “1997년 서울대 교수가 되면서 미국 박사후연구원 때 공부했던 것을 버리고,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나노과학에 뛰어든 게 20년 만에 빛을 본 셈”이라며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발표는)노벨상 급에 들어갔다는 하나의 좋은 지표가 되는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벨상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대가들이 있어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나노 분야 과학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앞으로 노벨상에 근접한 국내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현 교수는 23년째 나노소재 제조 및 의료·에너지 분야 응용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지금까지 400편 이상의 논문을 세계적인 학술지에 게재했으며, 현재까지 5만8000회 이상 인용됐다.

기초과학연구원에 따르면 현 교수의 ‘승온법’(heat-up process) 연구는 현 교수 연구팀이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전시킨 순수 국내 기술이다. 크기가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승온법은 전 세계 연구실 및 산업 현장에서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표준방법으로 자리매김했다. 현 교수는 “기존 방식으로 나노소재를 합성하면, 입자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게 생산돼 필요한 크기의 입자만 골라 사용해야 했다”면서 “2001년 온도를 서서히 올리며 반응을 시키는 승온법으로 균일한 나노입자 합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 교수는 2004년 1000분의 1의 가격으로 나노입자를 1000배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를 통해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 합성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이 기술은 첨단TV나 태양전지 등 반도체 공정부터 암 진단,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 교수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노벨상을 휩쓴 국가 대부분은 1900년대 초반부터 기초과학투자가 이뤄졌고,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기초과학분야 투자가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30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이 정도의 기술 위상을 확보했다는 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하지만 현 수준에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나노 기술은 중국 등 후발국의 거센 추격에 흔들리고 있다”며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기술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 ‘퍼스트 무브’(First Move)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교수는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불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나노기술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현 교수의 선배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현 교수가 상을 받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이유 없다”면서 “나노 화학 분야가 굉장히 뜨거운 주제였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이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분야는 많다”며 “나노 분야를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부문이 먼저 받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현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6), 호암상(2012), 포스코청암상(2008)등 국내 최고 과학상을 휩쓸었다. 2011년 국제연합 교육문화기구(UNESCO)와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이 발표한 ‘세계100대 화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화학분야 세계적 학술지인 미국화학회지(JACS)의 부편집장으로 선임됐으며, 유수의 화학·재료·나노 분야 국제학술지에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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