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탄 '유전자가위'…희귀 유전병 '원컷 치료' 시대 연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10.0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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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 역대 女과학자 2인 공동 수상 처음

(왼쪽부터)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사진=노벨위원회(왼쪽부터)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사진=노벨위원회


올해 노벨화학상은 오늘날 유전자(DNA) 편집 연구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를 발견한 두 명의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분자생명과학 분야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여성 연구자 2명이 공동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위원회는 “이 기술로 연구자들은 동·식물·미생물의 DNA를 매우 정교하게 변형할 수 있게 됐다”며 “이 기술은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과 유전병 치료의 꿈을 현실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두 과학자는 DNA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기존 기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교정·편집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를 개발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불치병인 유전적 질환 등을 고칠 수 있어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 연구가 가장 활발한 기술이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는 2011년 처음 유전자 가위 개념을 발견했다. 이후 RNA(리보핵산)의 대가인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두 연구자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가위를 재구성하는데 성공했고, 유전자 가위의 분자 성분을 단순화하는데 성공했다. 또 유전자가위로 DNA의 특정 부분을 잘라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유전자가위 이미지/사진=노벨위원회유전자가위 이미지/사진=노벨위원회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사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는 유전자가위는 생명과학의 지형을 바꿔놨다. 이를테면 향후 식량난 해결과 더불어 인공장기 개발을 위한 ‘미니 돼지’나 병충해에 강한 쌀 등은 유전자가위로 만든 작품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 이내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 질환 치료제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유전자가위는 각종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포 변화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질병유전자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가위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특정 유전자를 특이적으로 인식해 결합하는 부분, 다른 하나는 인식한 유전자의 서열 사이를 실제로 절단하는 부분이다. 이 두 부분을 어떻게 디자인을 하느냐에 따라 인간 전체 유전체 중 유일한 위치만을 선택적으로 자를 수 있다. 이 기술은 세대별로 구분되는데 1세대 기술이 ‘징크핑거’, 2세대는 ‘탈렌’, 3세대가 크리스퍼 기술이다.


1세대 가위는 성공률이 24% 정도에 불과했다. 즉 4개를 만들면 하나 정도만 효율적으로 유전자 교정이 가능했다. 2세대 가위 성공률은 이보다 다소 높은 64~88%였다. 3세대는 이전보다 수백 배 이상 정밀하고 사용도 간편하다. 이 때문에 희귀 유전병 치료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학중 고려대 화학과 교수는 “유전 질환 치료를 위해 각종 유전자 조작 기술이 연구됐지만 기존 방식들은 원하는 유전자를 정확하고 빠르게 자르는 능력이 떨어져 한계가 있었다”면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조작 난이도가 비교적 낮고 정확도가 높은 데다 부작용도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를 꼽는다. 김 전 교수는 유전자가위를 대량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유전자가위의 구조를 변화시켜 높은 효율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김 전 교수가 대주주로 있는 툴젠은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 관련해 미국 대학 연구소 견제에도 불구하고 8년 만에 미국 특허 등록 허가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선 특허 기술 탈취 논란에 휩싸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교수가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개발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툴젠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은 탓이다. 툴젠과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번 노벨화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900만크로나(약 10억9000만원)가 주어진다. 상금은 두 사람에게 절반씩 돌아간다. 매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던 시상식은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오프라인 시상식 대신 TV 중계로 대체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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