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중간 집하장의 모습. 폐기물들이 가득 쌓여있다./사진=이강준 기자
코로나19(COVID-19)는 한국을 반강제적으로 '배달 중독' 사회로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커피 한 잔마저 '배달'시켜 마시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김씨 회사는 5만세대의 폐기물을 수거하는데 매달 플라스틱만 250톤, 비닐만 90톤 가량을 가져간다. 코로나19가 없던 지난해에 비해 배로 늘어난 수준이다.
◇원유 폭락→플라스틱 가격↓→재활용 플라스틱 '외면'…"갈 곳 잃은 재활용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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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이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입하지 않는데다 원유가격 하락에 따른 플라스틱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수출길이 막혀 재고가 쌓였고, 재활용 플라스틱보다 원유로 새 제품을 만드는 게 더 저렴해져서 제조사들이 재활용품을 찾지 않는 것이다.
재활용 폐기물들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자 먼저 영향을 받은 건 재활용 수집업체다. 최종처리업체에서 '물건'을 받지 않자 연쇄적으로 중간가공처리업체, 중간 집하장도 폐기물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폐기물 물량 폭주는 고스란히 업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김씨 회사 같은 수집 업체들은 돈을 받기는 커녕 '㎏당 요금'을 내면서 집하장에 물건을 대기 시작했다. 이미 계약한 아파트에서 배출하는 폐기물들은 정해진 기한내에 어떻게든 수거해가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내야하고 계약이 파기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플라스틱과 비닐만 따져도 매달 1000만원 정도 손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집하장에 길게 늘어선 폐기물 트럭…"이번주부터 서울 인천서 플라스틱 대란 시작될 것"
1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중간 집하장에서 폐기물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서 대기하고 있다./사진=이강준 기자
김씨는 "이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거다. 코로나19로 재활용 폐기물양이 늘어나니 물건을 수거해가는데도 오래 걸리고 집하장에 내려놓는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며 "트럭을 비울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하는 데 그동안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왜 수거 안해가냐'며 항의 전화가 쏟아진다"고 했다.
1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중간 집하장에서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폐기물을 집게차가 옮기는 모습./사진=이강준 기자
김씨를 비롯한 재활용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플라스틱 대란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 집하장들이 물량을 거부하거나 아예 '셧다운(영업정지)'에 들어간 곳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 폐기물이 급증하자 이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거 작업이 늦어지며 주민들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집하장은 늘어난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 10일부터 일부는 돌려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당장 다음주(9월14~20일)부터 서울과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대란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 등 민간에서 배출하는 폐기물 양은 업체에서 연단위로 집계하기 때문에 월단위 증가폭은 현재 파악하기 어렵다"며 "다만 지자체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전반적으로 코로나19 이후로 증가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강준 기자, 김남이 기자
코로나 이후 폐기물 2배 늘었는데…"더이상 쌓아 둘 곳이 없다"
11일 방문한 수도권 종합재활용품선별업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4미터(m) 이상 쌓인 재활용품 비닐 블록(왼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블록 뒤로는 아직 선별되지 못한 플라스틱류가 보관돼 있다. /사진=정경훈 기자
◇팔릴 곳 없는 재활용품…중간선별업체 "저장공간 포화…이번주 영업 쉰다"
11일 방문한 수도권 소재 한 재활용품 중간선별업체에서는 재활용이 가능한 비닐과 플라스틱 블록 수십 개가 입구 앞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곳은 전체 공간 3300제곱미터(㎡·1000평) 중 저장 공간이 70%(700평)인 시설이다. 관리자 A씨는 "도저히 추가 보관이 불가능해 다음주에는 영업을 쉴 계획"이라고 이날 말했다.
약 4미터(m) 높이로 쌓인 블록 더미 뒤로는 아직 분류되지 않은 패트병·일회용기 등 플라스틱 재활용품이 같은 높이로 언덕을 이뤘다. 주변 생활권과 서울에서 온 폐기물들이다.
미분류품 언덕 맞은편으로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들이 비슷한 규모로 쌓여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비닐이나 식사용기 등 일회용품이 여럿 보였다. 음식물이 묻은 폐기물은 현실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다수다.
A씨가 근무하는 선별 시설에서 선별 작업 후 남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 등 폐기물 /사진=정경훈 기자
사람이 직접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과 아닌 것을 나누는 실내 작업실만 분주했다. 선별된 물건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나와 저장공간 한편에 계속 쌓였다. 이를 밖으로 실어나르는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시설 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울 한 자치구의 중간선별업체 직원 B씨도 "코로나19 이후 재활용품이 크게 늘었다"며 "이전에는 70t 정도 보관했는데 요새는 100t 정도로 늘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 팔 곳 없어 애물단지…"매달 3000만~4000만원 적자"
물량이 늘어도 팔리기만 한다면 괜찮다. A씨는 "예전 같으면 지금처럼 쌓이지도 않고 팔렸는데 유가하락 등 영향에 물건이 계속 쌓이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코로나19로 물량이 많이 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판로가 사라진 게 문제"라며 "중국에서 2017년 폐플라스틱 등 수입을 중단해 판로가 막힌 데다가 기업 입장에서는 유가가 계속 하락해 저렴해진 새 석유로 제품을 만드는 게 이득이라서 폐플라스틱을 좀체 사지 않는다"고 했다.
B씨도 "수출과 유가 문제와 더불어 코로나19 경제 타격으로 기업들도 힘드니까 재활용품에 대한 수요를 줄인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업체 수익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며 "보통 한 달에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400t 정도 중간 가공업체에 팔아 2억원 정도를 벌었는데 최근에는 1억2000만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이 50명인데 인건비만 9000만~1억원 정도 나간다"며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도 수거량 중 30%에 해당하는데 버릴 때 톤당 17만~18만 원 정도를 내야 해 결과적으로 업체는 매달 3000만~4000만원 정도 적자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못버티면 폐기물 쌓일 것…발빠른 대책 필요"
(사진=뉴스1) 송원영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언택트' 소비로 재활용 쓰레기가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8일 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에서 직원들이 재활용품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6개월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감염 재확산에 따라 정부는 물론, 개인들도 환경과 위생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이 불가피해지면서 가능한 재활용률을 높이는 깨끗한 분리배출이 중요하다. 2020.9.8/뉴스1 sowon
A씨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재활용품이 쌓여간다면 업계 자체가 앞으로 몇주 버틸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에 위탁·민간을 합해 중간선별업체가 120개 정도 있다"며 "업계에서는 '운영비도 충당 못하는데 물량만 쌓여 더 이상은 수거를 못하겠다'는 소리가 빗발친다"고 했다.
아울러 "중간선별업체가 포화되면 결국 동네에서 1차로 수거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쓰레기를 보낼 곳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이대로 추석 연휴를 맞으면 주택가가 쓰레기장이 되는 난리가 날텐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매입처리, 수거·중간선별 업체 대상 보상 강화 등 대책 마련이 급하다"고 강조했다.
정경훈 기자, 이태성 기자
플라스틱 분리수거 한다고 전부 다시 쓰는거 아니다…재활용률 고작 30%
◇"폐플라스틱, 실제로는 30%만 재활용"
14일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은 그동안 세계 최상위권의 폐기물 재활용률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무려 86.1%를 기록했다. 통계대로라면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재활용된다는 얘기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는 재활용률보다는 분리수거율에 가까운 수치다.
통상적으로 폐기물 재활용은 '수거-선별-재활용'의 세 단계 과정을 거친다. 시민들이 분리한 쓰레기를 수거업체가 모아 선별업체로 넘기고, 선별업체는 건네받은 폐기물이 재활용에 적합한지 살핀다.
정부는 선별업체에 반입된 총량을 재활용 통계로 삼는다. 업체가 그 중 얼마를 재활용했느냐는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 선별업체가 재활용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폐기물로 다시 처리한 폐플라스틱도 '재활용'으로 집계되는 셈이다. 심지어 이 통계에는 음식물 쓰레기도 재활용 가능 폐기물로 구분된다.
잔재물을 빼면 실제로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전체의 30% 수준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폐기물 관련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면서 "2016년 기준 재활용률 1위 국가인 독일(67%)마저 실질 재활용률을 재산정하면 50%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평균이 16%인 수준에서 재활용을 잘한다는 국가도 30%를 넘기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50%만 재활용 가능
(수원=뉴스1) 조태형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강화 조치로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포장용 플라스틱 용기 배출이 급증했다. 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자원순환센터에서 수거된 재활용품들이 쌓여있다. 2020.9.1/뉴스1
대표적인 복합재질 플라스틱은 비닐이다. 햇빛 차단, 식품 보존 등 여러 기능을 갖춘 플라스틱으로 이뤄져있다. 플라스틱 포장지나 페트의 60~80%가 재활용이 가능하다면 비닐은 썩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이 세계 상위권에 속해있다. 유럽 플라스틱·고무산업 제조자 협회(EUROMAP)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132.7㎏으로 벨기에(170.9㎏)와 대만(141.9㎏)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미국(93㎏)과 중국(57㎏), 일본(65.8㎏)도 제쳤다.
2017년 한국에서 사용된 비닐봉지만 해도 235억개(46만9200t), 페트병은 49억개(7만1400t), 플라스틱 컵 33억개(4만5900t)였다. 비닐봉지만으로 한반도 70%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개발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홍 소장은 "소비량을 줄이면서 재활용률을 늘려야 한다"면서 "특히 연구를 통해 플라스틱 생산단계에서 재질구조를 단순화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한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