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사를 함께했던 법조계 지인은 1년 8개월을 수사한 사건을 기소할지 말지 한달 가까이 장고하는 상황 자체가 검찰의 실패라고 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수사를 접자니 무리한 수사를 자인하는 꼴이고 권고를 무시한 채 기소하려니 스스로 만든 개혁안을 내던지는 모양새다.
법치의 경계선에서 '우리가 최후의 보루'라고 외쳐온 검사 개개인의 진의를 의심할 순 없다. 유독 기업인에 약한 면모를 보였던 검찰이 이만큼의 끈질김을 보인 데도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법 혹은 제도가 '가진 사람'의 방패가 돼선 안 된다는 말에도 토를 달 이가 있을 리 없다.
어쩌면 어느 검사실은 사건을 좀더 진지하게 수사하지 못한 데 대한 회한으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검찰청 담장 밖에서는 지금 이 상황이 지난 반세기 검찰이 휘둘러온 무소불위 기소권이 만들어낸 필연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무리한 수사를 기소권으로 덮어온 과오가 수사심의위 출범으로 이어진 순간부터 오늘의 이런 상황은 예견됐던 장면이다.
여전히 검찰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서 검찰이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내 권한이니 내 맘껏 하겠다는 생떼가 낳은 비극이 딜레마에 빠진 검찰의 자화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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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권력은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자 모든 순간 견제의 대상이다. 이건 검찰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확신의 그림자는 자만이라고 했다. 스스로 내놓은 개혁의 돌파구마저 밀어낸다면 온전히 목소리를 낼 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사심의위가 내린 10대 3 불기소 결정의 의미를 돌아볼 순간이다. 변화의 물꼬를 스스로 틀 수 있느냐는 검찰의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