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와 2인3각…이재용의 상생철학 'K칩 시대' 열었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6.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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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와 2인3각…이재용의 상생철학 'K칩 시대' 열었다


"8년에 걸친 삼성전자와의 연구개발 끝에 설비 개발에 성공하면서 회사 임직원들도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반도체 레이저 설비 협력사인 이오테크닉스 성규동 대표는 25일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와의 공동개발 성과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이오테크닉스는 상장기업으로 주식시장에서도 알아주는 '기술주'로 통한다. 하지만 유독 고성능 레이저 설비 만큼은 자체 개발에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가 삼성전자와 이 장비 공동 개발에 성공하며 D램 미세화 과정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불량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이 장비는 반도체 회로에 화학물질을 균일하게 도포(증착)하는 공정에서 필수적인 설비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할수록 화학물질을 빈틈없이 도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 장비를 3세대 10나노급 D램 공정부터 적용,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평소 지론인 상생협력·동반성장 비전이 빚어낸 이른바 'K칩 시대의 결실'이다.



반도체 부품 정밀세정업체 싸이노스도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반도체 식각공정 효율화에 필요한 세라믹 파우더 개발과 리코팅 기술 내재화에 성공했다. 솔브레인은 삼성전자와 협력을 통해 3D(3차원) 낸드플래시 식각공정의 핵심소재인 '고선택비 인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협력사들과 진행해온 반도체 생태계 육성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초반부터 주요 설비·부품 협력사와 자체 기술개발에 공을 들였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서도 지난 4월 원익IPS, 테스, 유진테크, PSK 등 국내 주요 설비협력사를 비롯해 2~3차 부품 협력사와 양해각서를 맺고 오는 7월부터 설비부품 공동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설비사가 필요한 부품을 선정하면 '삼성전자-설비사-부품사'가 공동개발 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설비부품의 개발과 양산 평가를 지원한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지원정책도 이미 가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부터 정부와 삼성전자, 반도체업계가 1000억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상생펀드'를 조성해 국내 유망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업체를 발굴하고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중소 팹리스의 제품 개발 활동에 필수적인 MPW(멀티프로젝트웨이퍼) 프로그램을 공정당 연 3~4회로 확대 운영하고 8인치(200㎜)뿐 아니라 12인치(300㎜) 웨이퍼로 최첨단 공정까지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해준다.


이달부터 중소 팹리스가 서버 없이도 반도체 칩 설계를 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설계 플랫폼'(SAFE-CDP)도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주차타워에 설치된 총 3600장, 150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 /사진제공=삼성전자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주차타워에 설치된 총 3600장, 150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 /사진제공=삼성전자
산학협력을 통한 반도체 우수인재 육성도 삼성전자가 각별하게 챙기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국책 반도체 특성화 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에 반도체 Asher(공정장비), AFM(계측장비)을 기증해 학생들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직접 실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대와 함께 올해 '인공지능반도체공학 연합전공'도 신설했다. 2018년 8월 서울대와 맺은 '국내 반도체 분야 발전과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협약에서 한발 더 나간 조치다.

삼성전자는 환경 보호를 통한 지역사회와 상생 실천에도 팔을 걷었다. 지난해 말부터 기흥캠퍼스 주차타워에 1500kW(킬로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 오는 7월부터 기흥 일부 사무공간의 전력을 대체할 예정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을 총괄하는 DS(다바이스솔루션)부문의 환경안전연구소에서는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절감과 재활용률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K칩 시대' 구상 배경에는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책임경영 철학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올 1월 DS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함께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기업이자 글로벌 톱 반도체업체로 삼성전자가 '나홀로' 잘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 협력사, 학계와 손발을 맞춰 반도체 산업의 근원적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라는 얘기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 강화 이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 정책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도 엿보인다. 이 부회장도 최근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우리경제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나오는 가운데 거듭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상생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당시 혼란에 빠질 것이란 우려와 달리 삼성전자를 비롯해 업계가 공동대응에 나서면서 소부장 산업을 육성할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냈다"며 "'K칩 구상'은 일본, 미국 등 수입품에 의존해온 국내 반도체 소부자 업계의 국산화 속도를 높여줄 또다른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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