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힘 빼도 여전히 '국민MC'인 이유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6.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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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M c&C사진제공=SM c&C


방송인 강호동은 한때 ‘힘의 MC’였다. 약관의 나이에 천하장사였던 이만기마저 꺾으며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의 힘은 방송가에서도 유효했다.

하지만 당시의 강호동은 ‘리더’보다는 ‘보스’에 가까웠다. 동료들을 뒤에서 밀며 독려하기보다는, 앞에서 힘껏 끌어당기며 따라오길 바랐다. 최근 그의 불같은 열정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강호동은 달라졌다. 더 이상 그는 힘으로 윽박지르지 않는다. 후배들의 놀림 앞에서 송곳니와 발톱을 뽑은 사자처럼 편안하게 웃는다. 그 사이 ‘강호동의 위기’라는 진단이 사라졌다. 몇 년 사이 그는, 또 다른 의미의 ‘국민 MC’가 됐다.

강호동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이는 스튜디오를 벗어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이 대세로 떠오르던 시점과 맞물린다. 스튜디오를 벗어난 예능 촬영은 고되다. 촬영 시간도 길고 여건도 좋지 않다. 하지만 강호동은 KBS 2TV ‘1박2일’의 리더로서 심지 굳게 밀고 나갔다. 당시 ‘1박2일’이 기록한 시청률 39.3%(2010년 3월 7일)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몰고 온 TV조선 ‘미스터트롯’(35.7%)이 깨지 못한 유일한 성적이다.
 
스튜디오물을 녹화할 때도 강호동의 스태미나는 대단했다. 일반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인 ‘스타킹’의 녹화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긴 녹화에 지쳐 졸던 연예인 패널이 강호동의 호통에 깨어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다른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는 어떤가? 게스트가 출연하는 순간부터 혼을 쏙 빼놓은 후 그의 속내까지 쏙쏙 빼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하지만 잠정 은퇴 선언 후 돌아온 강호동는, 예전만 못했다. 중단됐던 ‘스타킹’과 ‘무릎팍도사’가 재개됐지만 대중은 더 이상 호응하지 않았다. 그 사이 새로 론칭한 예능 프로그램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조기 폐지’라는 강호동과 어울리지 않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언론들도 앞다투어 ‘강호동의 위기’라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다. 유재석의 ‘무한도전’이 건재한 상황 속에서 ‘국민 MC’ 쌍두마차 체제에 균열이 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뚜렷한 성공작을 내놓지 못한 탓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강호동이 가장 강점을 보이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더 이상 예능계의 대세가 아니었다. 이 자리를 육아 예능과 관찰 예능 등이 꿰찼다. 두 컨셉트는 ‘신선함을 원한다’는 원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방송가를 주름잡는 몇몇 MC들이 쳇바퀴 돌 듯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중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원했다.


그 저변에 자리잡은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육아 예능은 아기들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돌발 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는 연예인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관찰 예능도 ‘리얼’이 기반이다. 그동안 대중은 연예인들의 꾸며진 모습을 봤다면, 이제는 그 이면을 보길 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시가에 강한 힘을 바탕으로 캐릭터 플레이를 하던 강호동이 설 자리가 줄어들 반면, 출연진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촌철살인 멘트를 내뱉는 ‘관찰자’ 역할에 능한 신동엽의 위상이 올라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강호동이 대단한 MC인 이유는 마냥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찰 예능의 토커로 참여하기 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사수했다. JTBC ‘아는 형님’과 tvN ‘신서유기’가 그 예다. 두 프로그램 모두 ‘1박2일’ 시절의 강호동이 보여준 것과 비슷한 구도를 갖는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그건 바로 강호동이다. 그가 어깨에서 힘을 쫙 뺀 것이다.

‘아는 형님’에서 강호동은 번번이 공격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얼마 전 출연한 가수 조권은 "예능의 흐름과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 ‘스타킹’과 ‘강심장’ 때의 호동이가 아닌 것 같다"며 "사실 나는 그 때 (강호동 예능의) 수혜자였는데 같은 그룹이었던 (임)슬옹이 엄청 힘들어했다. 자기 기분이 계속 다운이 된다더라. 사실 ‘스타킹’ 녹화 시간이 엄청 긴데, 임슬옹은 키도 커서 장시간 의자 앉아있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냐. 그런데 멘트를 치려고 하면 무시하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미스터트롯’으로 주목받은 이찬원은 어린 시절 출연했던 ‘스타킹’을 떠올리며 "‘스타킹’ 일반인 피해자 1000명도 모을 수 있다"고 폭로했다.

중요한 건, 이를 받아들이는 강호동의 자세다. 그는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변명한다. 그리고 사과한다. 그런 폭로를 예능의 아이템으로 삼고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를 갖춘 MC가 지금의 강호동이다. 강호동 때문에 ‘아는 형님’ 섭외를 거절했다던 가수 황보가 "강호동과의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면서도 "근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MC로서 강호동의 자세가 달라졌으며, 트렌드를 읽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 서유기’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는 조금 거짓말을 보태자면, 아들이나 조카뻘인 아이돌 가수들과 허물 없이 어우러진다. 그들이 강호동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그리 없다. ‘조금 덩치가 큰 형’ 정도로 인식하며 편안하게 다가선다. 이와 동시에 대중도 강호동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줄인다.

강호동의 변화와 도전은 tvN ‘대탈출’과 ‘라끼남-라면 끼리는 남자’에서 도드라진다. 얼마 전 시즌3를 마친 ‘대탈출’은 밀실을 빠져나가야 하는 출연진의 두뇌 싸움을 그린 어드벤처 버라이어티다. 엄밀히 말해 이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메인 MC’라 볼 수 없다. 여러 출연진 중 한 명일 뿐이다. 당연히 그가 전체 흐름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힘을 앞세우던 그가 갑자기 대단한 추리력을 발휘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뚝심있게 중심을 잡는다. 천하장사가 호들갑 떨며 겁을 먹는 모습으로 흐름에 발맞추는 모습에서는 박수가 나온다. ‘대탈출’의 시청률은 2%대다. ‘1박2일’의 영광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대탈출’은 10∼30대가 환호하는 예능이다. 어느덧 50대를 앞둔 강호동은 이렇게 젊은 세대와 소통해가고 있다.

‘라끼남’은 10분 안팎의 SNS 기반 예능이다. 그는 자신의 먹성을 앞세워 삼겹살 파채라면, 조개라면, 대게라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라면을 끓인 후 이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올드 플랫폼에 머물리 않고 뉴 플랫폼에 승차하려는 시도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나영석 PD다. ‘촉이 좋기’로 정평 난 나 PD는 ‘1박2일’ 이후 왜 십수 년 간 강호동을 고수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강호동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하지만 강호동은 고여있길 원치 않는다. 그 큰 몸을 움직여 흐름에 동참한다. 과거에는 버티던 강호동의 뚝심이 이제는 유연함까지 갖춘 셈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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