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터리' 의기투합…삼성 현대차 '포스트 반도체' 가속화

머니투데이 이정혁 기자, 유영호 기자, 박소연 기자 2020.05.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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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 뉴삼성 첫 행보 '배터리 기지'
"저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전격 회동한 것은 '포스트 반도체'로 주목받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이 부회장은 특히 '뉴(New) 삼성'을 선포한 지 일주일 만에 재개한 첫 번쨰 현장 경영을 정 수석부회장과 함께 했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단독 회담을 가진 삼성SDI 천안사업장은 소형 배터리와 자동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핵심기지다. 삼성전자는 최근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00㎞에 이르는 '전고체 배터리' 혁신기술을 발표했는데 현대차와 앞으로 이 분야에서 튼실한 협력관계를 이어갈 전망이다.

◆코로나19에도 계속되는 현장경영 행보



이 부회장은 코로나19(COVID-19) 사태에도 불구, 현장경영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경북 구미사업장(스마트폰)을 찾았고 연이어 수원 삼성종합기술원(R&D)과 충남 아산사업장(디스플레이)을 방문해 그룹의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이번 방문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SDI를 격려하기 위한 의미가 남다르다. 2015년 매출 3조3000억원을 기록한 배터리 사업은 지난해 7조7000억원으로 2배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삼성SDI는 BMW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전기차 배터리를 '포스트 반도체' 사업으로 키우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보인다.


이 부회장이 7일 대국민 사과 이후 첫 행선지로 삼성SDI를 찾은 것도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는 경영 철학을 분명히 한 셈이다.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배터리 사업

삼성은 이미 2018년 8월 '180조원 투자,·4만명 채용 계획'을 발표할 당시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AI(인공지능) △5G(5세대 통신) △바이오 등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이 전장 사업에는 차량용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가 포함된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이번 회동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2017년 9조원을 투자해 인수한 미국 전장전문 기업 하만(HARMAN) 이후 대규모 M&A(인수·합병)이 없는 점으로 볼 때 앞으로 배터리 분야의 '빅딜'이 나올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친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7년 330억달러 수준인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연간 25%씩 고속 성장해 2025년에는 1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삼성전자가 1위를 수성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 속에서도 자기만의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첫 현장 경영이 배터리라는 것은 뉴삼성이 이곳에 쏠릴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현대, 내년 차세대 '전기차' 나온다
'꿈의 배터리' 의기투합…삼성 현대차 '포스트 반도체' 가속화


가솔린과 디젤 같은 내연기관차가 배터리와 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하는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로 빠르게 대체될 전망이다. 이 같은 자동차 '전동화'는 현대·기아차가 미래 자동차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전기차 출시를 본격화해 2025년에는 세계 3대 전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삼성SDI 같은 배터리업체와의 협력이 필수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이날 전격 회동한 것도 현대차의 전동화 밑그림 일환이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내년 1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에서 만든 첫 전기차를 출시한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코나EV나 니로EV 같은 전기차 9종을 내연기관차 플랫폼에서 생산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본격 가동하며 테슬라나 메르세데스-벤츠 EQ모델, BMW i모델 같은 전기차들과 주도권 경쟁을 벌인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까지 이 전기차 프로젝트에 80조1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자동차 전동화를 중심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2025 전략'에 맞춰 2025년까지 61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모듈형 전기차 체계를 바탕으로 전동차 라인업을 확대해 2025년까지 배터리 전기차 56만대, 수소 전기차 11만대 등 전동차 글로벌 판매량을 67만대로 늘린다. 이 계획대로라면 세계 3대 전동차 기업으로 도약 가능하다.

현대차는 내년 중에 제네시스 브랜드 중 처음으로 전용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2024년 이후에는 전동화 라인업을 더 확대한다. 고성능 N 브랜드를 적용한 전동차도 개발해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현대차는 2030년부터 한국과 미국, 중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 내놓는 신차를 전동차로 모두 대체할 방침이다. 2035년부터는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서도 전동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올해 1월 발표한 ‘플랜 S’를 기반으로 2025년까지 29조원 투자한다. 2025년 전 차급에서 전기차 11종의 풀 라인업을 갖추고, 글로벌 점유율 6.6%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2026년 전기차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 50만대(총 친환경차 100만대)를 팔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기아차가 이처럼 '전동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세계 자동차시장 패러다임과 맞물려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환경규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동화는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유일한 활로나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다면 선제적 투자로 시장 리더십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승부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동화 시장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전용 플랫폼 개발과 핵심 전동화 부품의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2025년까지 11개의 전기차 전용 모델을 포함하여 총 44개의 전동화 차량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 EVs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12만6436대에 달한다. 이는 △테슬라(36만7820대) △비야디(22만9506대) △베이징자동차(16만251대) △상하이자동차(13만7666대) △BMW(12만8883대)에 이어 6위다. 올 1분기의 경우 현대차는 전기차 2만4116대를 판매하며 △테슬라(8만8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3만9355대) △폭스바겐그룹(3만3846대)에 이어 4위로 올라섰다.

유영호 기자

이병철-정주영에서 이재용-정의선까지…"경쟁자인가, 협력자인가"
우정사업본부가 2015년 발행한 '현대 한국인물 시리즈' 3번째 우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을 소재로 한 우표다. /사진=머니투데이DB우정사업본부가 2015년 발행한 '현대 한국인물 시리즈' 3번째 우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을 소재로 한 우표다. /사진=머니투데이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전격 회동하면서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해온 두 그룹이 본격적인 협력 관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글로벌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한때 불편했던 관계를 뒤로 하고 미래지향적 실리를 함께 나눌 예정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해방 이후 70년 넘게 재계 서열 1·2위 자리를 다투며 경쟁해왔다. 주력 분야는 전자와 자동차로 각각 다르지만 한때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나선 경험이 있고, 현대는 전자 및 반도체 사업도 영위했다.

특히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번갈아 맡으며 개인적으로도 친분을 과시했다. 1980년대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나란히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며 선의의 경쟁을 펴기도 했다.

삼성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의 일명 '2.8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질세라 현대그룹은 그 해 2월 23일 반도체와 산업전자 분야 진출을 발표하며 현대전자산업을 설립했다.

사실상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경쟁을 통해 한국 메모리 반도체가 도약한 셈이다. 이후 삼성이 1995년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를 설립하고, 자동차 사업에도 진출하며 양사의 경쟁구도는 더욱 강화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반도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과정에서 현대전자산업은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한다. 삼성 역시 2000년 부진했던 자동차 사업을 접는다.

양사 관계는 2000년대 이후 주력 사업이 전자와 자동차로 명확히 재편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별세하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빈소를 찾았고, 답례로 정몽구 회장이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을 방문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삼성-현대차 그룹은 오너 3세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협력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명분이 아닌 실리 목적이다. 전장부품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집중 육성하고 있는 삼성의 이해관계와 자동차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아가려는 현대차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다.

IT 분야에서 협력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도요타와 소프트뱅크는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차세대 교통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공동 출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단독 기업만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며 "전략적 협력이 필수인 상황에서 과거의 악연을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을 계기로 IT와 자동차 업계의 협업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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