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05.13 18:12
글자크기

[컴백, '메이드 인 코리아'-③노동, 파이를 늘리자]<4>일방통행 멈추고 손내민 노조 "일감·고용절벽 힘모으자"

편집자주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무역·투자 상대국의 국경봉쇄가 잇따르면서 우리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제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짜인다. 대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사회적 문화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고객이 없으면 노동조합도, 회사도 존재할 수 없다." (2월12일 현대차 노조 소식지)

"조합원은 생산품질을 책임지고 회사는 조합원에 대한 고용과 임금,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 (4월27일 현대차 노조 소식지)

대립과 갈등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한국 노사문화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산, 판매, 고용이 위태로운 생존 기로에서 새로운 노사관계 설정을 설정을 위해 노조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해법으로 거론되는 대기업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을 본격화하려면 모처럼 조성된 노사협력 분위기를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강성노조가 만든 임금·철밥통 신화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그동안 강성 노조 문화는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의 유턴을 막고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도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1000대 제조업체 중 해외사업장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150개사 가운데 국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고임금 부담'(16.7%)과 '노동시장 경직성'(4.2%)이 2, 3위를 차지했다.

유턴 기업 확대를 위한 필수 과제로도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29.4%)를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번영지수(레가툼 지수)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 유연성은 조사 대상 149개국 중 97위에 그친다.

노조 서릿발…제조업 엑소더스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국내 기업의 유턴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중심의 지원 정책이 수차례 반복됐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는 것도 한국 특유의 '노사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13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에서 "무엇보다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하고 더 유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해외에 나간 기업들도 국내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한 임원은 "국내 공장에서 자동차 1대를 만드는 데 토요타나 포드보다 평균 4~5시간이 더 걸리는 이유는 파업에 빠져있는 노조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엄살 떨지 말아라"에서 "일감 확보 손잡자"로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경제계 안팎에서 현대차 (249,500원 ▼500 -0.20%) 노조의 '변신'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성 노조의 대표주자로 불린 현대차 노조가 고질적인 투쟁 일변도 노조 문화에서 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다.

현대차 노조가 직원들의 '임금 동결'을 언급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전에는 회사가 아무리 경영난을 겪어도 임금 인상 요구를 꺾지 않았다.

현대차 노조의 표현대로 "서로 해줄 것은 해주고 받을 것은 받는 노사 '윈윈' 문화"가 정착되면 기업 경쟁력 제고를 넘어 국내 기업들의 리쇼어링과 일자리 창출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닛산·포드…코로나 충격에 글로벌 車업계 추풍낙엽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현대차 노조가 임금 동결과 고용 보장을 맞바꾼 독일식 노사 협력 모델에 이어 생산 품질까지 꺼내든 것은 글로벌 완성차업계에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부는 가운데 고용을 보장받기 위한 포석이 있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 수년 동안 이어진 세계적인 저성장 구조와 올 들어 수그러들 줄 모르고 확산하는 코로나19 사태 여파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의 고용 안정이란 곧 일감 확보를 말한다"며 "앞으로 국내 공장이 추가로 가동 중단할 가능성이 있어 임금 동결을 앞세워 이를 미리 막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완성차업계에서는 코로나19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일본 닛산은 미국, 영국, 스페인 공장의 근로자 2만여명을 대상으로 일시 해고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GM과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도 직원 급여 삭감을 단행했다.

현대차 역시 올 1분기 완성차 판매량이 100만대 아래로 떨어지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분기 판매량이 100만대를 밑돈 것은 9년 만이다.

결단이 만든 훈풍…"노조 인식 변화 더 빨라져야"
현대차 노조는 왜 '임금' 대신 '일감'을 얘기하기 시작했나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는 조선업계에서도 예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말 사례는 노조의 목표가 '임금 인상'에서 '일감 유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과 강일남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일감 확보를 위해 손을 맞잡고 말레이시아 선사인 MISC를 방문했다.

국내 조선사 노사가 일감 확보를 위해 계약 상대방을 함께 방문한 것은 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일감 확보에 노사가 따로 없다는 노동자협의회의 결단이 보기 드문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조업 엑소더스(대탈출)를 막고 해외로 빠져나간 공장까지 돌아오게 하려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노조의 목표도 일감과 고용으로 인식의 대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