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으시네요"…노인을 위한 '셋방' 없다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이태성 기자 2020.04.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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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노인 거부하는 집주인들]①

편집자주 노인들이 허름한 월세, 사글세로 밀려나고 있다. 돈이 없어도 그렇고 있어도 그렇다. 집주인들이 '치매' '고독사' 등을 우려해 노인 세입자들을 거부해서다. 소외되고 있는 대한민국 독거 노인들의 주거 실태를 점거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나이가 많으시네요"…노인을 위한 '셋방' 없다


어머니가 살 집을 구할 수 없었다. 직장인 심준호씨(가명·36)는 서울 금천구 집 근처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오피스텔과 원룸 월세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올해로 79세인 어머니의 나이가 문제였다.

심씨는 보증금 3000만원, 월세 50만원 정도의 집을 구하기 위해 근처 중개사무소를 찾았다. 중개사는 '이 정도 예산이면 충분하다'며 신축 오피스텔을 소개해줬다. 심씨는 바로 20만원의 계약금을 걸었다.



하지만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집주인이 돌변했다. 집주인은 "죄송합니다. 계약을 안하겠습니다. 어머니 나이가 너무 많으시네요."라고 말했다. 중개사가 "아들이 집 근처에서 살고, 대기업을 다니고 있어 성실히 월세를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심씨는 "다른 중개사무소도 상황은 마찬가지 였다"며 "어떤 중개사는 차라리 아들이 계약을 하고 어머니를 따로 모시는 게 어떻겠냐며 위장전입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심씨 어머니는 낡고 허름해 공실률이 50%가 넘는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셋방 경쟁에서 밀리는 노인들..."집주인의 노인 기피 만연"
"나이가 많으시네요"…노인을 위한 '셋방' 없다
혼자 사는 노인이 ‘셋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 나가는 집은 모두 손사래를 친다. 결국 낡고 사람들이 안 찾는 집이 노인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90대 여성 서울 강북구 윤명순씨(가명)도 지난해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의 집을 구하려다 집주인의 거절로 실패했다. 70대 아들이 직접 집주인을 만나 어머니가 건강하고, 월세도 충분히 낼 수 있다며 설득했지만 집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집을 어렵게 구해도 계약이 해지된 사례도 있다. 혼자 사는 60대 남성 김노식씨(가명)는 서울 강북구 다세대주택 1층에 입주하기로 했다. 계약서 작성 때부터 눈이 침침한 김씨를 집주인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 김씨가 '계약서상에 있는 가스레인지가 안 보인다'며 집주인에게 따지자 집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계약금을 모두 돌려 줄테니 나가 달라"고 했다. 결국 김씨는 근처 다른 집을 구해야했다. 집주인은 불을 낼까 무서웠다고 중개사에게 둘러댔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독거노인의 셋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송채규씨는 "노인들이 버려지는 시대"라며 "집주인이 노인을 기피하는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주인들이 혼자 사는 노인을 꺼리는 이유는 혹시 모를 사고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임대업을 하는 김모씨(66)는 70대 할머니를 집에서 내보냈다. 김씨는 "돈도 있고, 가족들도 자주 찾아왔지만 치매기가 있어 불안했다"며 "그나마 정신이 있을 때 내보내야 한다"고 말을 흐렸다.

고독사는 더 난처하다. 송현경 공인중개사는 "혹시나 혼자 살다 돌아가시면 집주인이나 중개인 모두 곤란하다"며 "특히 연고가 없으면 이미 낸 보증금이나 못 받은 월세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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