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일자리…'대타협 3.0' 있어야 살아남는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기성훈 기자 2020.04.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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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이제는 노·사·정대타협①

편집자주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마다 노·사·정이 서로 양보해 맺은 대타협은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로 평행선만 달리던 경영계, 노동계가 코로나(COVID-19) 극복을 위해 다시 모이고 있다. 노·사·정 대화의 현재를 진단하고 대타협 방향을 모색해본다.

사라지는 일자리…'대타협 3.0' 있어야 살아남는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용 위기 파고를 넘을 수 있었던 원동력인 노·사·정 대화가 코로나19(COVID-19) 위기를 맞아 다시 꿈틀거린다.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고용 지표가 시발점이다. 사회적 대화를 외면했던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눈앞에 다가온 고용위기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자고 먼저 요구했다. 개별기업 최대 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 노조도 고용 보장을 전제로 임금 동결을 언급했다.



강성노조까지 대화에 공감한 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미 금융위기를 극복한 경험에 따라 노·사가 각각 임금 조정, 일자리 유지 및 나누기를 수용해야 고용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경영계·노동계 한데 묶은 암울한 고용 지표
(서울=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0.3.30/뉴스1(서울=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0.3.30/뉴스1


28일 경영계, 노동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민주노총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불참하고 있어 이번 대화는 임시대화기구를 마련해 원포인트로 진행될 예정이다. 경영계, 노동계 그리고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대량 해고 방지다. 암울한 고용 지표가 경영계, 노동계를 한 데 묶었다.

고용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날 발표된 3월 사업체 종사자는 전년 대비 22만6000명 줄었다. 고용노동부가 2009년 6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첫 감소다. 지난달 구직급여 수급자(60만8000명), 지급액(8982억원)은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된 1995년 이후 최대다. 직장을 잠깐 쉬고 있는 일시 휴직자는 지난달 160만7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3년 이래 가장 많다.


사회적 대타협 전제 조건, 제살 깎기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이 2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회장실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0.3.2/뉴스1(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이 2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회장실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0.3.2/뉴스1
노·사의 지향점은 똑같으나 사회적 대타협까진 가시밭길이다. 모두 살을 깎는 양보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까지 이번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모든 노·사·정이 모이게 된다. 금융위기 당시엔 민주노총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09년 2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가 성사시킨 사회적 대타협은 '일자리 나누기'란 큰 성과를 도출했다.

당시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하겠다고 했고, 노동계도 임금 동결·반납 또는 삭감을 수용했다. 노동자는 근로시간 또는 임금을 줄이고 기업은 고용 보장, 더 나아가 신규 채용도 했다.

"한국 금융위기, 일자리 나누기로 충격 완화"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코로나19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과 함께 전국에서 공동행동을 가졌다. 2020.4.22/뉴스1(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코로나19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과 함께 전국에서 공동행동을 가졌다. 2020.4.22/뉴스1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를 두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었던 한국이 금융위기 땐 일자리 나누기 등으로 고용 충격을 완화했다"고 평가했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 나누기는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은 경우 고용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직원을 해고할 때 발생하는 고정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 정리해고 등 고통 분담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려고 했던 1998년 노·사·정 대타협의 패러다임은 현재와 맞지 않다"며 "(금융위기 때처럼) 양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고용을 유지한 상태에서 현 위기를 극복하는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대타협, 외환위기·금융위기 때보다 진화 필요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서류를 작성 설명을 듣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 연령대 가운데 20대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전체 취업자가 전년동월대비 19만5000명 줄어든 가운데, 20대 감소폭이 17만6000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 고용절벽이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키면서 정부는 신규 구직세대를 위해 긴급·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0.4.21/뉴스1(서울=뉴스1) 허경 기자 = 2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서류를 작성 설명을 듣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 연령대 가운데 20대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전체 취업자가 전년동월대비 19만5000명 줄어든 가운데, 20대 감소폭이 17만6000명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 고용절벽이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키면서 정부는 신규 구직세대를 위해 긴급·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0.4.21/뉴스1
이에 지난 10여년동안 경제 환경이 변화한만큼 노·사·정 대화는 지난 위환위기, 금융위기 때 도출한 합의를 넘어 '사회적 대타협 3.0'으로 보다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기 당시만 해도 일하는 시간이 길어 근로시간 감축을 통해 나눌 일자리도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로시간 자체가 줄었다. 근로시간을 줄여 새로 만들어낼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 또 고용노동부의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처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제도화됐다.

결국 핵심은 임금 조정을 통한 일자리 지키기다. 임금은 노·사 모두 가장 예민한 영역인 만큼 노·사·정 간 대타협 필요성이 더욱 크다. 특히 노·사·정이 고용 유지를 위해 임금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를 어떻게 소화할 지가 관건이다.

대타협 핵심, 임금 조정 통한 일자리 지키기
사라지는 일자리…'대타협 3.0' 있어야 살아남는다
정부와 정치권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먼저 국회 계류된 주 52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도 필요하다. 주52시간 근로에 따른 기업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미래통합당은 단위기간 1년 확대를 요구한다. 법안 등 제도가 개선돼야만 기업의 운영에 숨통이 트인다.

2009년 사회적 대타협 사정을 잘 아는 한 정부 인사는 "2009년은 프랑스 등에서 주 30시간이 시작되던 때라 근로시간을 줄이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고 일자리 나누기에도 반영됐다"며 "근로시간이 감소한 현재는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보다 기존 일자리를 지키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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