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종이 호랑이'?…발톱 숨겼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3.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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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제29차 정기주주총회에서 SK 장동현 대표이사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제29차 정기주주총회에서 SK 장동현 대표이사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국민연금이 '종이 호랑이'에 그쳤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해당 안건들이 경영진 의사대로 거의 전부가 통과된 데 대한 지적이다.

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날까지 정기 주총을 개최한 기업 중 127개사에 대한 사전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했는데 이 중 46개사의 안건 80개에 대해 반대 또는 기권표를 행사했다. 이사·감사 등 선임안이나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 및 정관변경 등에 대한 반대였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의 입김은 이번 주총에서 하나도 반영되지 못했다. 80개 안건 모두가 가결됐다.



아직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700여 기업 전부에 대한 반대표 행사 여부는 집계되지 않았다. 개별 기업의 주총이 끝난 후 2주 후에야 전부 공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사안이 묻힌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사안이 주총에서 최종적으로 부결된 비율은 2015~19년간 최저 0.3%에서 최고 1.9%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종이 호랑이라고 비웃기에는 아직 이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통과된 '적극적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지만, 요건에 따라 국민연금의 압박이 조금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종이 호랑이'?…발톱 숨겼다
국민연금은 적극적 주주권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두 가지 통로로 △중점관리 사안에 해당하는지 △예상치 못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우려 사안이 발생했는지 등을 보겠다고 가이드라인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중점관리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이드라인은 5가지 유형을 나열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지속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음에도 개선이 없는 사안'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연금은 "최근 5년 내 이사·감사(감사위원) 선임안 중 동일한 사유로 2회 이상 반대의결권을 행사한 기업 중 개선 여지, 반대의결권 행사횟수, 보유비중 등을 고려해 수탁자 책임활동 대상기업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했다. 나머지 4개 유형에서도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기업 중 기업 안팎 상황 등을 고려해 수탁자 책임 대상기업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했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올해 효성의 조현준 회장과 조현준 사장에 대해 각각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한 의무수행 우려' 등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한 바 있다. 2018년에도 국민연금은 이들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이력이 있다. 올해 LS산전이 사외이사·감사위원으로 추천한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에 대해 국민연금은 올해 외에도 2017년에도 "연구용역 등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인한 독립성 취약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었다. 이들 안건들은 국민연금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두 가결됐다.


한편 국민연금은 중점관리 사안을 이유로 수탁자 책임활동 대상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 대해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으로 지정해 개선을 요구한 후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공개 중점관리 대상기업으로 재지정한다는 방침이다. 이후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경우 국민연금은 주총에 주주로서 주주제안 등 보다 적극적 방식의 주주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ESG 등 비재무적인 경영요소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한 기업인 경우 국민연금은 일단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으로 지정해 상황을 판단한 후 개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주주제안에 돌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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