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벗어난 국민연금, SK그룹 주총 이사선임 반대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0.03.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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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3월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기자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3월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기자


이제 2거래일만 지나면 12월 결산법인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도 막을 내린다. 이번 주총 시즌은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표명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정기 주총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내역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의결권 내역 사전공시 대상 기업 127개사의 정기 주총에서 46개사에서 상정된 안건 중 80개 안건에 반대 또는 기권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 46개 기업의 80개 안건에 반대 또는 기권.. 이유는?
국민연금은 투자대상 기업의 보유 지분율이 10%가 넘거나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 비중에서 1% 이상 비중을 차지한 기업 등을 골라 사전에 의결권 행사 내역을 밝힌다. 전체 투자대상 기업의 의결권 행사 내역은 주총 시즌이 종료된 지 2주 가량 후에 공개된다.



국민연금 내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매매를 하는 직접운용 종목의 경우는 일부 위탁 운용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한 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이 일괄해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국민연금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채 위탁 운용사를 통해서만 투자한 기업은 위탁 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자기 판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 위탁 운용사의 표결은 각 사의 판단에 따라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부분찬성 또는 부분반대 형태로 나타난다.

국민연금이 반대 또는 기권 의사를 표시한 80개 안건 중 53개(부분반대 포함)가 사내·사외이사 또는 감사위원·상근감사 선임안이었다. 주로 기업과 이해 상충 또는 독립성 저하 등이 이유였다.

국민연금은 포스코가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장승화 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겸 무역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이해관계로 인한 독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LS산전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에 대해서는 "연구용역 등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인해 독립성 취약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대덕전자가 감사 후보로 내세운 손현곤 현 와이솔 감사에 대해서는 "계열사의 현직 상근 임직원"이라는 이유로, SK텔레콤이 기타 비상무이사로 추천한 조대식 SK수펙스협의회 의장에 대해서는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각각 반대 표를 던졌다.

그외 이례적으로 국민연금은 한라홀딩스, 만도의 정몽원 회장 선임안에 대해서는 기권 표를 던졌다. 기권 이유는 "그간의 경영 노력과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이 2월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0년 새해 첫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발언하는 조 부위원장 뒤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방기 규탄 및 주주활동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0.2.5/뉴스1(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조흥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부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이 2월5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0년 새해 첫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발언하는 조 부위원장 뒤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방기 규탄 및 주주활동 촉구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0.2.5/뉴스1
이사보수, 배당안 및 정관변경 등에도 반대의견
대림산업, SBS, SK이노베이션, LS, 삼성엔지니어링, 효성첨단소재 등 20개사가 상정한 이사보수 한도 승인안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는데 그 이유는 "보수 한도 수준이 보수금액에 비춰 과다하고 보수 금액이 경영성과 대비 과다하다"는 것으로 동일했다.

배당지급 계획 등이 담긴 재무제표 승인안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한 경우도 있었다. 국민연금은 케이씨텍, 삼천당제약, 샘표식품, GS홈쇼핑 등 4개사의 재무제표 승인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이들 4개 기업에 대한 의결은 위탁 운용사를 통해서만 행해져서 부분찬성 및 부분반대 형태로 나왔다.

이외에 국민연금은 제이콘텐트리의 정관 변경안에 대해 "전환주식 및 상환주식 발행한도가 과다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전환상환 주식의 주요 조건을 이사회 결의로 정하도록 돼 있다"며 "사채발행 권한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게 위임하는 것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이 우려된다"고 반대 표를 던지기도 했다. 또 SKC코오롱PI에서는 "사외이사 임기 변경, 이사회 소집통지 기한 단축, 정관상 이사회 결의대상 축소에 따른 이사회 견제기능 악화 우려, 이사 책임 감경조항 도입으로 주주권익 침해가 우려된다" 등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 반대안건 대부분이 원안대로 통과
그러나 이 중 아직 주총을 개최하지 않은 휴맥스, KT 등 2개사를 제외한 44개사에서 국민연금이 반대 표를 행사한 안건은 모두 가결됐다. 국민연금 의도와 달리 안건이 통과됐다는 얘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560개 기업 3949개 안건에 대해 찬성, 반대 의사표시를 했다. 찬성이 3301건(83.6%), 반대가 648건(16.4%)로 반대율은 11.9%를 기록했던 2018년보다 4.5%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연금이 각 기업의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면서 반대 비율도 올라갔다. 반대 안건 중 실제로 부결된 안건은 11건뿐이었다. 이중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부결 4건을 제외하면 실제로 국민연금의 의사가 반영된 것은 7건에 불과했다. 반대 안건의 99%는 경영진의 의사대로 처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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