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정치·행정 다 엮인 '대한항공 흔들기'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최석환 기자 2020.03.1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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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정비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 고립된 한국인 700여명의 국내 송환을 위해 오는 30∼31일 대한항공 전세기를 4차례 급파한다. / 사진=인천국제공항=이기범 기자 leekb@29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정비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 고립된 한국인 700여명의 국내 송환을 위해 오는 30∼31일 대한항공 전세기를 4차례 급파한다. / 사진=인천국제공항=이기범 기자 leekb@


한진그룹이 반도건설 권홍사 회장에 이어 조현아 3자연합의 핵심 축인 KCGI(일명 강성부펀드)에 대해 복수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KCGI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활동 규칙, 공시의무 등을 위반했고, 보유 중인 투자목적회사(SPC) 역시 위법 투자를 진행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의 위법행위 판단 칼자루가 금융당국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명분을 잃은 적대적 M&A(인수합병) 추진이 국책항공사 대항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을 흔들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분쟁을 산업, 자본시장, 정치에 금융행정이 모두 엮인 초대형 이슈로 몰고가는 형국이다.

한진칼 (65,900원 ▲600 +0.92%)은 16일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지분공시심사팀)에 KCGI, 반도건설,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 이뤄진 3자연합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와 처분을 요구하는 조사요청서를 제출했다고 17일 밝혔다. (관련기사 : 한진칼,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금감원 신고)



"KCGI 자본시장법 위반, 수사기관 고발요청"
한진칼은 특히 KCGI의 위법 사항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엄정한 조치를 요청했다.

한진칼은 KCGI의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규제 위반에 대해서는 추가적 권유 제한 및 수사기관 고발을 요청했다. SPC의 투자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KCGI에 대한 업무정지 및 해임요구를, 임원·주요주주 보고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시정 명령 및 수사기관 통보를 요청했다.

한진칼 관계자는 “반도건설과 KCGI의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및 신뢰성을 훼손시켜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며 “기업 운영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일반 주주들의 손해를 유발시키는 위법 행위을 묵과할 수 없어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칼은 KCGI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활동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한진칼에 따르면 KCGI는 지난 6일 위임장 용지와 참고서류를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제출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말을 제외하고 이틀 후인 11일(수요일)부터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KCGI는 이보다 앞선 7일부터 의결권 위임 권유를 시작했다고 한진칼은 주장했다. 한진칼 관계자는 "이는 정당한 의결권 행사를 방해하는 법 위반 행위"라고 강조했다.

KCGI 강성부 대표(가운데)가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KCGI 강성부 대표(가운데)가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한진칼은 또 "KCGI가 산하 SPC들을 통해 위법 투자행위를 진행해 왔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PEF(경영참여형사모펀드)는 공동으로 10% 이상 경영권 투자를 할 수 있지만 SPC는 공동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 한진칼은 이에 따라 SPC는 공동이 아닌 단독으로 10% 이상 경영권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SPC가 최초 주식 취득일로부터 6개월 경과 시점까지 10% 이상 경영권 투자를 하지 못할 경우 그로부터 6개월 내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금융위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KCGI는 한진칼 지분 12.46%를 보유한 그레이스홀딩스에 대해서만 10% 이상 경영권 투자 의사를 밝혔을 뿐, 나머지 SPC는 그렇지 않았다는게 한진칼 측 주장이다. 현재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 등 총 6개의 SPC를 운용 중이다.

한진칼 관계자는 "특히 2.42%를 보유한 엠마홀딩스의 경우 최초 한진칼 지분 취득 시점이 지난 2019년 2월 28일로 경영권 투자 없이 지분을 보유한지 12개월이 지나 자본시장법 위반이 확정됐으므로 엄정한 처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진칼은 또 KCGI가 공시 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2018년 12월 28일부로 한진칼 주식 10% 이상을 보유해 주요주주 지위에 올랐다. 법적으로 임원이나 주요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개별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해 3월 이후 특별관계자인 엠마홀딩스, 캐트홀딩스 보유 주식을 그레이스홀딩스 소유 주식으로 포함해 공시했다. 한진칼은 "이에 따라 실제 주식의 소유자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심각한 공시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권홍사-조원태 진실공방 '진흙탕 싸움'
반도건설 권홍사 회장 / 사진제공=반도건설반도건설 권홍사 회장 / 사진제공=반도건설
한진칼은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에 대해서는 지분취득 목적을 '경영참여'로 밝히기 훨씬 전부터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참여를 실질적으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과 12월 조원태 회장을 만나 한진그룹 명예회장직을 요구하고 그룹 소유 부동산 개발 등을 제안하는 등 경영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10일에야 반도건설 측이 뒤늦게 한진칼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것이 허위공시라고 주장했다. 한진칼은 이 사안에 대해서도 공시위반이라며 금감원 조사를 요청했다.

반도건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반도건설은 "조 회장과의 만남은 (선친) 조양호 회장 타계 이후 조 회장이 요청해 이뤄졌고, 만난 시기 지분율은 2~3%에 불과했다"며 "조 회장 측이 '도와달라'는 제안에 대한 대답을 몰래 녹음하고 악의적으로 편집해 악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진은 "지난해 12월 10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권 회장의 요청으로 만났고, 12월 6일 기준 한진칼 지분 6.28%를 보유한 권 회장의 제안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제안이 아닌 협박에 가까웠다"며 "명예회장직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반론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맞섰다.

만약 권 회장의 행보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금융당국이 반도건설 지분 일부의 의결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3자연합은 실제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될 것임을 확인한 후 이미 반도건설 계열사 주식 8.28%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상황이다.

명분 흐려지는 적대적 M&A의 결말은
중국 우한 거주 한국 교민 수송을 위한 전세기 운항 일정이 지연된 가운데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인천국제공항=이기범 기자 leekb@중국 우한 거주 한국 교민 수송을 위한 전세기 운항 일정이 지연된 가운데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인천국제공항=이기범 기자 leekb@
조현아 3자연합의 위법행위에 대한 칼자루를 금융당국이 쥐게 되면서 한진그룹 경영권분쟁에는 산업계와 금융계, 정치계, 관계가 모두 엮여들어가는 형국이 됐다. 한진그룹 경영권은 27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일단 향방이 결정된다.

적대적 M&A를 추진하는 KCGI에, 뒤늦게 지분취득 의도가 드러나고 있는 반도건설이 결합했다. 여기에 본인의 그룹 내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합류하면서 이른바 조현아 3자연합이 완성됐다.

당초 KCGI는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 경영과 소유 분리 등을 통한 거버넌스 개선과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한진그룹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그룹을 격랑으로 끌고들어간 장본인 조 전 부사장과 손을 잡으면서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명분에 상처를 입었다.

양 측이 원색적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채이배 민생당 의원으로부터 국회 발 '리베이트 논란'이 불거졌다. 이어 '권홍사 진실게임'과 KCGI의 자본시장법 위반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는 금융감독원이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총을 열흘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양측의 지분은 1%포인트 대 차이에 불과한 박빙의 구도다.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의결권 제한은 물론 소액주주들의 표심 등 모든 요소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의결권 지분 2.9%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도 여전히 강력한 캐스팅보트다.

이 가운데 최근 한국과 미국의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KCGS(한국기업지배구조원)와 ISS가 각기 조원태 회장 측 손을 들어주는 의견을 냈다. 이들의 판단이 연기금과 소액주주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표 대결의 무게중심이 조 회장 쪽으로 쏠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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