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간 혈투 '상속분쟁' 풀어줄 열쇠와 자물쇠는…

머니투데이 김태현 기자 2020.03.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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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생소한 '신탁'...정체가 뭐니?]①"복잡다단한 가정 구조 반드시 필요한 신탁"

부모의 재산을 두고, 벌이는 자식들 간의 치열한 혈투. 비단 영화나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대법원에 따르면 국내 상속 재산에 대한 분할 청구 건수는 2018년 기준 1710건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4배 넘게 늘었다. 가족 붕괴는 물론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늘어나는 치매 환자 수만큼 상속 분쟁도 늘어난다. 치매에 걸리기 전 혹은 사망하기 전 상속을 마무리하고, 노후 자산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상속 문제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열쇠'이자 '자물쇠'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탁은 금융기관에 자신의 재산을 맡기고, 관리받는 서비스다. 재산을 맡기는 ‘위탁자’(부모), 맡은 재산을 관리·처분하는 ‘수탁자’(금융기관), 그 재산으로부터 수익을 얻는 ‘수익자’(배우자 혹은 자녀) 등 3자 구조로 돼 있다. 재산을 맡은 수탁자는 위탁자의 요구에 맞춰 일대일 자산 관리를 수행한다. 개인이 미처 챙기지 못한 세제 혜택을 챙겨주고, 사후 상속 절차까지 진행하게 된다.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이다. 신탁 재산은 철저히 사전에 위탁자와 수탁자 간에 맺어진 신탁 계약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또 신탁 재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인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탁 계약에 따라 지정된 수익자에게 바로 전달된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은 “신탁은 돈 많은 자산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가정 구조와 개인의 욕구를 해결해줄 열쇠이자 자물쇠”라며 “상속에 대한 고민이 깊은 초고령사회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보다 고령화가 앞서 진행된 이웃 일본에서는 노후 자산 관리와 상속 문제 해결을 위해 보편적으로 ‘신탁’을 이용한다. 지난해 9월 기준 신탁재산 규모만 1224조엔(약 1경3767조원)에 달한다.

유언 대용신탁으로 사망 후에도 재산관리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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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대용신탁은 가장 대표적인 신탁이다. 상속을 하는 사람이 자산을 금융기관에 맡기면, 금융기관이 계약에 따라 상속 집행을 책임지는 서비스다. 유언장 없이도 상속을 집행할 수 있는 신탁 계약이라는 뜻에서 유언 '대용'신탁으로 불린다.

단순 유언장과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차이는 재산의 생전 및 사후 관리다. 유언장은 상속이 끝난 이후 재산 관리는 오롯이 피상속인의 몫이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은 상속 이후에도 금융기관에게 재산 관리를 맡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익자 연속 방식이 있다.

자신이 죽으면 금융기관이 대신해 배우자를 위해 신탁 재산을 운용하다가 배우자가 사망하면 자녀들이 상속받는 방식이다. 이때 자녀의 상속분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유언의 효력 발생과 변경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유언대용신탁의 특징이다. 유언장의 경우 국내법상 공정증서, 자필증서, 녹음,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5가지 방식이 있다. 법에서 정한 엄격한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에 따라 집행되기 때문에 위탁자의 의사만 명확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예컨대 A씨가 공증사무소를 통해 유언장을 공증받고, 맡겼다고 하자. 10년 뒤 A씨가 유언 내용을 바꾸려는데 만약 공증사모소가 폐업했거나 사라지면 유언장을 확인할 길이 없다. 처음부터 다시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아야 한다.

65세 이상 10명 중 1명은 치매…내 재산 누가 보호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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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대용신탁의 일종으로 치매안심신탁이 있다. 유언장을 대신해 상속을 집행하는 유언대용신탁에 치매를 앓는 위탁자의 자산 관리 기능을 더한 신탁 상품이다.

최근 늘어나는 치매 환자 수만큼 치매안심신탁의 필요성도 커진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74만8945명이다.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의 경우 의사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도 못하고 상속도 뜻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다.

치매안심신탁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첫째 치매에 걸린 위탁자가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재산을 보호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평상시 신탁재산을 채권이나 정기예금 등 안전한 금융상품으로 운용한다. 그러다 본격적인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 위탁자를 위한 의료비, 요양비, 생활비 등을 금융기관이 나서 직접 비용 처리하게 된다.

치매 치료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식 간의 분쟁을 막을 수 있다. 단, 치매안심신탁의 경우 가입 시기가 중요하다. 중증 치매로 판단되면 신탁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자신의 증세를 파악하고, 미리 계약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생 때 집 나간 아버지가 유산 상속분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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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B군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제사를 치르고 상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초등학생 때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찾아와 배우자 상속분을 요구했다. 이혼하지 않아 법적으로 배우자 신분인 아버지에게 상속분 일부를 빼앗겼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속에 관여하는 일은 주변에서도 왕왕 볼 수 있다. 단독으로 법률 행위가 불가능한 미성년자의 경우 피해가 더 크다.

이런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게 미성년후견지원신탁이다. 미성년후견지원신탁의 가장 큰 특징은 미성년자의 재산 관리를 맡을 후견인을 위탁자가 직접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친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견인 자격이 생기는 걸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신탁이라고 하면 유언 상속을 떠올리는데 그렇지 않다"며 "스스로 재산을 통제할 수 없는 미성년자의 재산을 지켜주는 안전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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