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 반도체사업장 제2라인 건설현장에서 지난달 28일 공사 인부들이 삼삼오오 오가고 있다. /사진=이정혁 기자
2017년 완공해 메모리반도체를 생산 중인 1라인 옆으로 2라인 공사가 한창이다. 하루종일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이곳에선 귓등을 때리는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장의 작업자들은 얼굴을 반이나 가린 KF-94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공사장 출입구 한켠에 설치된 격리실만 아니라면 전국이 코로나19(COVID-19) 감염증 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반도체 전선 이상무(無)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사업장 제2라인 건설현장. /사진=이정혁 기자
올해 2라인이 완공되면 2018년 2월 예비투자를 결정한 지 2년여만에 후발주자와의 더 거리를 벌릴 수 있는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결실을 맺는다.
수조원 단위의 투자 결정부터 시설 준공, 양산까지 2~3년이 걸리는 반도체 산업에선 이런 발빠른 투자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생산라인 조성 자체가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준공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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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공장 건립이 지체돼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곳에 투입되는 건설인력은 하루 평균 1만2000여명. 1명이라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공사가 멈춰서면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 자체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재 가동중인 생산라인 못지않게 이곳 건설현장이 삼성전자,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걸머진 또다른 최전선인 셈이다.
라면공장 24시간 풀가동
농심은 24일부터 전국 5개 라면공장에서 기존 16시간 생산체제에서 24시간 체제로 전환했다고 28일 밝혔다. 농심 안성공장에서 라면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농심
코로나19 사태에도 이 공장은 멈춰설 조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농심은 주요 공장마다 라면 출고량을 30% 늘렸지만 몰려드는 주문 때문에 풀가동에 나섰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달 24일부터 안성, 구미, 부산, 녹산 등 전국의 5개 라면공장 생산체제를 기존 16시간에서 24시간 근무체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라면업체 삼양식품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초과해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신청한 상태다. 오뚜기 라면 생산공장에도 라면을 실어나르는 트럭이 장사진을 이뤘다.
오뚜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생필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라면 수요가 급증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지만 비상근무체제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꺾을 수 없는 초격차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사업장. /사진=이정혁 기자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핵심 연구개발(R&D) 인력이 모인 이곳은 삼성 반도체 전략의 전진기지다. 삼성전자가 쌓아올린 반도체의 성과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해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파운드리 공정 기술을 직접 보고 받았다.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연구소가 멈추면 삼성의 미래가 멈추는 것"이라며 "한사람이 빠지면 한사람 몫만큼 경쟁력이 후퇴하기 때문에 코로나19 사태가 아무리 엄중하다고 해도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앞의 가동중단 위협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LS타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건물 방역 소독을 끝낸 뒤 일부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같은 날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무선사업부와 네트워크사업부에서도 각각 확진자가 나와 휴대폰 생산라인인 2사업장이 멈춰섰다. 구미2사업장은 지난 22일에도 확진자가 나와 이틀 동안 폐쇄, 일시 가동중단됐다.
삼성전자 외에도 현대차 울산공장, LG전자 인천사업장, LS용산타워 등에서 최근 열흘새 확진자가 잇따랐다. 가동중단에 따른 피해 우려가 가장 큰 반도체 생산라인의 경우 방진복과 방진모, 이중장갑을 착용하는 만큼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낮지만 만에 하나 생산라인이 멈추면 천문학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2018년 3월 삼성전자 평택 생산라인이 단 30분 가동 중단됐을 때 손실액이 5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에도 꺼뜨리지 말아야 할 것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포스코 직원들이 포항제철소 내 버스 대합실을 방역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대기업 사업장이 한곳만 멈춰서도 하청업체와 2~4차 협력업체 직원까지 많게는 수천명이 손을 놔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5일 경북 경주시 현대차 협력업체의 확진자 발생에 따른 생산중단 여파로 울산4공장의 소형트럭 포터 생산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기업마다 생산하는 제품은 제각각이지만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은 하나다.
한 생산라인의 관계자는 "지금 모든 기업이 코로나19 사태에도 공장의 불빛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힘을 모아야 할 때 서로를 탓하는 일부 행태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