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아시아나 감사 재연?…신외감법 '칼바람'에 떠는 기업들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반준환 기자, 한정수 기자 2020.02.1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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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2020 정기주총]<1>주총전후 상장폐지 사유 해당기업 20곳 이상 전망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해외에서는 주총이 축제처럼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은 유독 경직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주총을 어렵게 하는 법과 제도적 모순이 많으니 사전절차부터 삐걱대고, 이 결과 정작 중요한 주주와의 대화는 일사천리로 마무리된다.

올해도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데, 주총의 본질부터 고민해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의결권 미확보, 회계법인 감사의견 논란, 전자투표 활성화, 사외이사 구인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등 이슈가 많다.



일단 올해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는 감사의견 문제다. 신 외감법(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영향으로 지난해 새로 감사인이 지정된 기업은 1224곳에 달한다. 2018년 699사 대비 75%가 증가했다.

잠재부실이 큰 좀비 기업은 투자자 보호차원에서 퇴출하는 것이 맞지만 감사인 변경과 외부감사 강화로 인해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상당하다.



제2 아시아나 감사 재연?…신외감법 '칼바람'에 떠는 기업들


주총 전후 상장폐지, 20곳 이상 될 듯
일단 코스닥 시장에서는 장기간 영업손실이나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관리종목 혹은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곳 이상이 해당할 전망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4일까지 '내부결산시점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 발생'이 공시된 코스닥 종목은 총 22개다. 이중 관리종목 지정 우려가 12개, 상장폐지 대상 우려는 10개 종목이다.

코스닥의 경우 △4년 연속 영업손실 △최근 3년 중 2년 간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사업손실이 자기자본의 50% 이상인 경우 △매출액이 30억원 미만인 경우 등이 관리종목 지정요건이다.


이후 다음 해에도 같은 사유(5년 연속 영업손실 등)가 발생하면 실질심사를 거쳐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에스모 머티리얼즈 (120원 ▼70 -36.84%), 제이웨이 (37원 ▼55 -59.78%), 에스앤더블류 (4,145원 ▲35 +0.85%), 파나진 (4,510원 ▲60 +1.35%), 픽셀플러스 (8,280원 ▼310 -3.61%), 에스디시스템 (2,190원 ▼15 -0.68%) 등 9개 종목은 최근 4년 연속(2016~2019년)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조이맥스 (9,850원 ▼290 -2.86%)와이오엠 (540원 ▲6 +1.12%)은 최근 3년 중 2번 이상 자기자본 50% 이상의 계속사업손실이 났고, 피앤텔 (117원 ▼224 -65.7%)은 별도 기준 매출액 21억원으로 매출액 30억원 미만 요건에 해당했다.

5년 연속 영업손실 등 10여 곳, 상장폐지 우려 커
제2 아시아나 감사 재연?…신외감법 '칼바람'에 떠는 기업들
5년 연속 영업손실로 상장폐지 우려가 발생한 종목은 에이앤티앤 (41원 ▼18 -30.51%), 내츄럴엔도텍 (2,450원 ▼65 -2.58%), 에스마크 (43원 ▼38 -46.9%), 솔고바이오 (423원 ▼12 -2.76%), 국순당 (5,200원 ▼100 -1.89%), 유아이디 (1,271원 ▲6 +0.47%), 알톤스포츠 (1,985원 ▼30 -1.49%), 한국정밀기계 (2,360원 ▼30 -1.26%), 스카이문스테크놀로지 (1,407원 ▼7 -0.50%) 등 9곳이다. 에스제이케이 (18원 ▼24 -57.14%)는 관리종목 지정 후 자기자본 50% 이상의 계속사업손실로 상장폐지 우려가 높아졌다.

지속된 실적 부진으로 관리종목이나 상장폐지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도 상당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제낙스 (280원 ▼226 -44.66%) 등은 2016~2018년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도 누적 영업적자였다. MP그룹 (145원 ▼24 -14.20%)럭슬 (21원 ▼1 -4.55%)은 최근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인데, 역시 지난해 4분기까지 영업적자였다.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그룹은 2017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됐고 이후 기업심사위원회와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상장폐지 결정을 받은 바 있다. 현재는 재차 열린 코스닥시장위 심의에서 8개월 개선기간을 받았는데 지난 10일로 기간이 끝났다.

MP그룹은 개선계획 이행 내역서를 제출하고 마지막으로 코스닥심의위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5년 연속 영업손실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정상적인 기업도 의견거절 나오면 어쩌나 전전긍긍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회계법인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감사법인은 삼일회계법인 그대로였지만 담당 회계사가 바뀌면서 기존 회계처리를 문제 삼아 갈등이 촉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는 2018년 부실이 심화 되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일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일은 아시아나에 ▲운용리스 항공기의 정비 의무와 관련한 충당 부채 ▲마일리지 이연 수익의 인식 및 측정 ▲손상 징후가 발생한 유무형 자산의 회수 가능액 ▲당기 중 취득한 관계 기업 주식의 공정 가치 평가 ▲에어부산의 연결 대상 포함 여부 및 연결 재무 정보 등과 관련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충분한 자료를 제출받지 못하며 감사에 제약을 받자 ‘한정’ 의견을 제시했다. 신용평가 등급 하향과 이에 따른 자본조달 비용 증가 등을 막기 위해 버티던 아시아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감사인 의견을 수용했다. 결과적으로 나흘 만에 ‘적정’ 의견을 받으며 상장 폐지를 모면했다.

아시아나 사태는 신 외감법이 만들어낸 단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감사인은 그간 고객인 기업과의 관계를 의식해 의견 개진을 강하게 하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으로 탄생한 신 외감법으로 처지가 바뀌었다. 감사인의 독립이 보장됐고, 대신 그 만큼 책임도 대폭 강화됐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도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변경된 감사인이 직전 감사인의 감사 내용을 문제 삼을 수도 있는 탓이다. 이를 사전에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감사인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파티게임즈 등 의견거절을 받았던 일부 코스닥 상장사들이 회계법인 재감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올해 금융당국은 "기업과 감사인(회계법인), 전 감사인과 현 감사인 간 회계 분쟁이 있을 때 전문가 협의를 거치면 감리를 받더라도 중징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으나 이를 믿는 기업들이 적다.

한 상장기업 임원은 "지난해에도 신 외감법 도입에 더해 회계법인으로 유입된 신규인력들의 업무미숙이 큰 문제가 된 적 있다"며 "신입 회계사들이 규정을 모르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이를 설득하는데 업무의 절반을 할애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특히 기존에 영업비용으로 처리되던 리스료는 자산 감가상각비와 리스부채 이자비용으로 중복 부담이 되는데, 이 문제 때문에 의견거절이 나올 뻔 했다"며 "올해는 미리미리 감사인과 협의를 진행하려 하지만 감사의견 제출시한을 넘기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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