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이승환이 선사한 화양연화!

이현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02.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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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 안겨준 삶의 큰 위로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큰딸. 지금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가 대학 합격 발표 못지않게 기다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룹 인피니트의 리더 김성규의 제대였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에 합격했고 때마침 솔로 콘서트가 열렸으니 누구보다 예매를 서둘렀고 마침내 콘서트 당일이 되었다. 문제는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가지 말라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애는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콘서트에 갔다. 그것도 혼자서. 매우 씩씩하게. 확실히 팬덤은 딸아이 독립심의 원천이었다.

큰 딸의 인피니트 사랑은 내력이 깊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니 어언 10여 년이다. 당시 나는 그룹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 아이에게 핀잔을 자주 들었다. 비슷한 자동차 브랜드와 헛갈려 끝자리를 자꾸 틀렸기에. 그럴 때마다 아이는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다그쳤다. “‘티’가 아니라, ‘트’라고! 트, 트, 트!!”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기에, 그 이름은 절대 잊을 일이 없다. 용돈을 모아 콘서트 예매를 혼자 하고, 일찍부터 혼자 콘서트를 다녔던 큰딸 덕분에 인피니트라는 그룹과 노래에 익숙해질 때쯤, 내게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이번에는 둘째 딸이 ‘덕질’을 시작한 것이다. 대상은 다름 아닌 방탄소년단!



올해 중학교에 올라가는 작은딸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지금처럼 우주 대스타는 아니었다. 둘째 아이는 열심히 앨범을 사 모았고(사 주었고), 가족이 함께 외출할 때마다 차에서는 늘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었다(들어 주었다). 일한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자주 놀아주지 못하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자는 일종의 면피였다. 거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둘째 아이의 멤버 이름 맞히기 테스트였다. 휴대전화로 멤버들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 누군지 맞혀보라는 것. 예나 지금이나 아이돌 멤버들이 섞여 있으면 당최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최대 난제였다. 내게 안면인식 장애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기도 했다.

거의 맞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는 내가 틀리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테스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즈음 우연히 운전 중에 방탄소년단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다. 일이 많이 힘들고,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어 우울해 할 때, 귓속으로 파고든 가사는 “애쓰지 좀 말아, 져도 괜찮아!” 였다. ‘오, 마이, 가~아아앗!’ 이 나이에 내가 자식뻘의 청년들에게 위안을 받다니! 그 뒤로 나는 작은딸 모르게 은근슬쩍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다운받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들의 히트곡을 섭렵하며 또 한 번 전율했으니, 그 가사는 바로, “날아갈 수 없음 뛰어, 뛰어갈 수 없음 걸어, 걸어갈 수 없음 기어….”였다.



삶이 ‘선물’이라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가정과 회사 안팎으로 식구가 늘어갈수록 삶은 ‘숙제’가 되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 나락에 머무는 것조차 사치일 때가 많아진다.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으므로.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때마다 일어서야할 ‘동기’도 본인 속에서 스스로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 진짜 어른이겠지만. 사실 동기라는 작은 탄환을 쏘기 위해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총알도 막아내겠다는 이 청년들이 내게 그 방아쇠를 당길 힘을 준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게 닥치는 세상으로부터의 시련을 막는 ‘방탄’이기도 했다.

‘관심’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이후 난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얼굴에 드리웠던 장막이 스르르 걷히는 영험함을 체험했다.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박지민, 정호석, 김태형, 전정국~! 내가 멤버들 이름을 모두 알아맞혔을 때, 마치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풍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방탄소년단 멤버들 얼굴에 개안(開眼)하고 만 것이다. 세상에나, 이렇게 전혀 다른 얼굴들을 그동안 몰랐다니!! 결말은 예상한 대로 식상해마지 않다. 이후 나는 작은딸 못지않은 열혈 아미가 되었고, 차에서는 대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있다.

사진제공=드림팩토리 사진제공=드림팩토리

그러나 사실 내겐 오래 전부터 ‘덕질’ 해온 가수가 따로 있었다. 작년 데뷔 30주년을 맞은 이승환이다. 20대 이후 (그것도 남편이 가보라고 예매를 해주어) 정말 오랜만에 찾은 작년 12월 콘서트에서 나는 잊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가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한결같이 내 삶의 백그라운드 뮤직을 들려준 ‘오빠’였던 것을. 콘서트 내내 한곡도 빠짐없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실로 오랜만에 내 심장이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도무지 심장 뛰는 것을 느낄 일이 없이 살아 온 요즈음이었기에…. 왜 잊고 있었을까. 한때 나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것을.

큰딸은 김성규 솔로 콘서트에서 돌아와 팬들 모두 마스크를 낀 채 열렬히 공연을 즐겼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작은딸은 곧 있을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날마다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팬이기에 행복할 것이고, 든든할 것이다. 물론 때로 슬프고 화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과 함께 세월을 공유하고 성장할 것이다. 팬덤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의는 전문가의 몫이다. 나는 그저 한 가지만 믿을 뿐이다. 누군가의 팬으로 살 때가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것을.

이현주(칼럼니스트, 플러스81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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