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전 미리 잡는 CCTV, '미행'인지 어떻게 알까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0.01.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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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범죄 AI CCTV' 모자 착용·발걸음 등으로 위험도 측정

영화 '악인전'에서 형사들이 후미진 골목길에서 범죄자를 쫓고 있다/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영화 '악인전'에서 형사들이 후미진 골목길에서 범죄자를 쫓고 있다/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SF(공상과학)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사전에 예측해 막아낸다는 다소 꿈같은 얘기가 이제 현실이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지난 2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보호연구본부팀이 범죄 위험을 예측하는 AI(인공지능) CCTV를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쉽게 말해 CCTV에 비친 현재 상황을 분석해 어떤 유형의 범죄가 향후 일어날지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솔루션이다.



이를테면 우범지대로 특정된 지역에서 새벽시간에 남녀가 일정 거리를 두고 계속 걸어가고 있다면 이를 미행으로 판단,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 등의 범죄 발생확률을 퍼센트(%) 단위로 표시하고, 관할 경찰서에 경고음으로 알린다.

이번 연구를 이끌고 있는 김건우 ETRI 정보보호연구본부 신인증·물리보안연구실장은 “과거의 몇 십만 건의 범죄 패턴을 학습한 AI CCTV가 영상에 나타난 상황을 계속 지켜보면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관련 R&D(연구·개발) 예산으로 총 92억2800만원(2019년 4월 1일~2022년 12월 31일)이 투입된다.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 등 지역자친단체와 함께 법무부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 등도 이번 연구와 관련한 현장시험·검증을 지원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장면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장면
◇예측치안시스템, 해외에선 이미 도입=아직 우리나라 치안 체계는 범죄 사후 조치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 외국에선 범죄 예방 중심의 예측치안시스템 중심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산타클라라 대학은 지진, 여진 예측 알고리즘인 ETAS(Epidemic-type aftershock sequence) 모델을 활용해 범죄 예측 기술을 개발했다. 범죄 발생 패턴이 큰 지진 뒤의 여진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지역에서 언제 어떤 유형의 범죄가 발생할지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 범죄를 7개월 단위로 재학습해 새로운 범죄 패턴을 분석했다. 범죄자와 피해자의 위치, 활동 반경, SNS(소셜미디어) 프로필 등도 활용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LA, 애틀랜타, 산타크루즈 등 60여개 도시에 적용되고 있다.

영국 법무부는 주관으로 개발한 ‘오아시스(OASYS)’라는 ‘범죄자분석시스템’은 런던 경시청에서 활용중이다. 5년간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갱단원들의 범죄 기록과 이들의 SNS글을 분석해 범죄 가능성을 예측한다.


중국은 공안 중심으로 2015년 GPS와 2000만대 CCTV를 분석한 범죄자 감시시스템 ‘톈왕’(하늘의 그물)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용의자 추적 및 위험상황 감지용으로 활용하다 점점 범죄예측시스템으로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히타치가 개발한 개발한 범죄예방시스템 PCA를 2015년부터 쓰고 있다. 이는 CCTV, 총소리, 교통상황, 날씨정보 등을 통해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특정한다. 또 위협수준에 따라 200m 범위까지 ‘잠재적 범죄 발생우려지역’으로 설정하고 폭행, 살인 등의 범죄 상황마다 발생 가능성을 확률적 수치로 표기한다.

이스라엘 보안·AI업체 코티카(Cortica)는 AI CCTV를 통해 예비 범죄자를 식별한다. 일차적으로 성범죄자 색출에 활용중이다.

이 같은 범죄예측시스템을 통해 얻는 범죄예방효과는 현재 평균 20~30% 수준으로 기술 개량·고도화를 통해 더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김 실장은 “범죄의 전조를 파악할 수 있으면 단순한 조치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AI CCTV 기술을 개발 중인 ETRI 연구진/사진=ETRIAI CCTV 기술을 개발 중인 ETRI 연구진/사진=ETRI
◇韓형 범죄예측기술, 뭐가 다른가=ETRI는 더 고도화된 예측 치안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선진국이 진행 중인 통계적 범죄 예측 방식에 지능형 CCTV 영상분석 기술을 더했다. CCTV를 통해 실시간 확인되는 현재 상황 정보까지 반영, 복합적으로 몇 시간, 몇 분 후 범죄 발생 위험도를 알아낸다. 김 실장은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범죄가 발생한 CCTV 영상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 위험상황은 아니었더라도 평상시와 다른 반복된 행동이 뒤늦게 감지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이 같은 사실에서 현재 CCTV 상황을 과거 범죄패턴에 비춰 얼마나 위험한지 분석한다. 즉, 과거 발생한 범죄의 ‘데자뷰(Deja vu)’를 재인식하는 셈이다.

위험 예측분석은 AI 분석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범죄가 발생하는 지역은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 대부분이기에 고성능 AI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우선, 연구진은 보유하고 있는 ‘지능형 CCTV 영상분석기술’로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예정이다. 또 구두 발자국 등의 소리 요소를 영상으로 전환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행동을 파악한다. 이를 통해 긴박한 뜀박질인지 지속적 미행 상황인지 등을 파악한다.

또 시각지능 기술로 화면 속 사람이 모자나 마스크, 안경을 쓰고 있는지, 배낭 등 도구를 지참했는지 등의 속성도 추가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다음으로 인식된 현재 상황이 과거 범죄 통계 정보와 비교해 위험도를 측정한다. 이를테면 새벽 2시, 후미진 골목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성이 젊은 여성을 따라가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면 위험도를 높게 책정해 알람을 주는 방식이다. 비슷한 패턴이 오후 2시, 서울 명동 거리라면 위험도는 크게 낮아진다.

연구진이 개발할 AI 기술에는 법원 판결문 2만 건을 분석해 범죄 발생 시 함께 나타나는 요소를 파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범죄 영상 데이터와 범죄 상황을 가정한 영상도 추가 확보해 학습할 예정이다.

아울러 연구진은 성범죄 전과가 있는 대상자를 관리하는 기술도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 위치정보 기준으로 발생하는 알람의 고의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사람이 다수 섞인 경우 CCTV를 살펴봐도 대상자 판별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ETRI는 연구진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 재식별기술(Person Re-ID)을 활용, 전자발찌 착용자처럼 고위험군 특정인의 경로를 분석하면 즉각 인근 CCTV로 사람을 찾게 만들어줄 계획이다.

이로써 정확히 우범자의 관리 대상 파악이 가능해지고 위험 행동 징후를 파악해 빠르게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동적위험 예측분석기술 △휴먼심층분석기술 △능동적AI생활위험도 분석기술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ETRI 측은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 CCTV통합관제센터와 경찰관제시스템 등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CCTV 영상만으로 범죄발생위험도를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며 “가로등 조명 제어, 경고음, 현장 출동 등 대응체계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이 같은 범죄 예측시스템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실현되지 않은 범죄를 두고 미리 단죄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 실장은 이에 대해 “영상 프라이버시 마스킹 등 개인 민감정보 보호기술을 통해 시민의 사생활 침해 우려도 근본적으로 해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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