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크는 아이들, 성교육 부끄러워하는 부모들

머니투데이 박준이 인턴기자 2019.12.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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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어린이집 사건 후](종합) 유아 성교육 현실 및 인식·제도 개선점

편집자주 경기도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만 5살 여아가 또래 아동으로부터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아이들을 위한 성폭력 예방 및 성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학계와 현장의 교육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유아 성폭력' 문제가 비단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전반의 문제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변하게 했고, 한국의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을까. 한국의 영유아 교육 환경과 성교육 전반의 실태를 분석해봤다.

3세 유아의 자위행위, 어떻게 보시나요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우리아이가 가해자가 될까 너무 무섭습니다. 우리 애가 그럼 전 진짜 미쳐 돌아버릴 것 같아요."

6살 남자 아이를 둔 엄마 하영씨(가명)는 최근 고민이 늘었다. 얼마 전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또래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주변에선 아이를 더 이상 '아이답게'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심지어 어린아이에 대한 성범죄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하영씨는 사람들의 불안이 이해가 되면서도 자기 아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정말 아이들이 변하고 있는 걸까. 하영씨는 "아이를 키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라고 호소했다.



◇늘어나는 유아 성폭력, 달라지는 시선

아동 간 신체 접촉 사건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18일 성피해 상담기관인 해바라기센터와 여성 긴급전화 1366에 따르면 신체접촉을 가한 아동의 나이가 10세 미만인 경우가 지난 2016년 317명, 2017년 480명, 지난해 519명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또래 아동의 중요 부위를 만졌다는 성남 어린이집 사건의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육아정책컨설턴트 출신이자 현재 종로구 모 어린이집의 ㄱ원장은 실제 유아들이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ㄱ원장은 "3세 아이가 교실에서 자위 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해 조심스럽게 부모에게 말씀드렸다"며 "성에 관심을 갖는 나이대가 빨라지고 있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신체와 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 건 발달 과정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며 "하지만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발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럴수록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여자 아이 부모는 아이에게 어떻게 제 몸을 지키라고 가르칠지, 남자 아이 부모는 다른 아이를 만지지 말라고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걱정을 호소한다. 4살 여자 아이 엄마인 김지원씨(가명·24)는 "처음 (성남 어린이집) 사건을 접했을 때 너무 불쾌했고 우리 아이들이 혹여나 저런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매일 걱정한다"며 "어린이집 하원 후 아이에게 오늘 어땠는지 물어보며 씻기면서 성기를 확인하게 된다"고 불안해 했다. 5살 남자 아이를 둔 경수현씨(38)는 "조금 더 빨리 아이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며 "하지만 (조심스러워) 어린이집 시설에서 교육을 잘 해주길 바라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네이트 판' 캡처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네이트 판' 캡처
아이 부모들 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성인 여성이 목욕탕,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어린 아이의 신체 접촉이 불쾌하다는 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3살 남자 아이가 치마 밑에 손을 넣어 화가 난다' '어린 아이가 가슴을 만져 경찰서에 신고했다'는 등 아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보글까지 등장했다. 20대 여성 박서영씨(26)는 어린 남자 아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오거나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불쾌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린 아이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는 건 분명한 잘못이다"며 "한국에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서 그런지 가해자가 아이든, 어른이든 여성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몇몇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뿐만 아니라, '성범죄' 자체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성폭력 행위도 좋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아 성폭력, '성범죄'로 바라봐야 하나





현재 영유아의 성적 언행, 신체 접촉, 유사 성행위 등을 규정하는 개념은 없다. 현행법상 10세 미만 아동 간에 발생한 성폭력은 성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아는 '성'에 대한 인지 능력이 부족하므로, 처벌보다는 치료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 아동의 성폭력 행위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일각에서는 늘어나는 아동의 성폭력 행위 발생을 막기 위해선 특정 행동들을 '성폭력'으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이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인정하되, 다른 아동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는 행위를 '나쁜 행동'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 간 성폭력의 경우 가해 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데도 아이나 부모가 이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 아동도 피해 아동도 성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를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실제 아동 간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들며 "해당아동이 자신의 행동이 성적 괴롭힘이라는 인식은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나쁜 거라는 인식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아동 간에서 발생하는 행위에 '성'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ㄱ원장은 "성폭행·성추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른의 기준이다"며 "영유아 아동들은 '성행위' 자체를 모른다"고 설명했다. 영유아 아동들이 인간 본성에 따른 성적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ㄱ원장은 "폭력은 폭력이다"며 "성 문제가 아닌,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인성 측면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아 성폭행', 아이들이 변한 3가지 이유
사진=각사 앱(어플리케이션) 로고사진=각사 앱(어플리케이션) 로고
◇자극적인 미디어 환경

아이들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은 미디어 환경이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 세대'라고 불린다. 많은 아이들이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고,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유튜브·SNS 콘텐츠를 시청하는 데 소비한다.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자료에 따르면 영유아의 53%가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최초 이용 시기는 평균 2.27세로 만 3세가 되기 전에 이미 스마트폰에 노출된다.



문제는 유튜브와 SNS엔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유튜브의 경우, 19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해 성인물 콘텐츠 시청 통제가 이뤄지고 부모가 '제한 모드' 등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연령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콘텐츠를 보는 경우, 부모의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경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시청하는 경우 등 모든 접촉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도 다르지 않다. SNS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콘텐츠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음란물에 영유아 아동들은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 한세영 이화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어린아이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실제 미디어 접촉에 대한 안전장치까지 신경 쓰는 부모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로그인 없이 '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사진=유튜브 캡처유튜브 로그인 없이 '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사진=유튜브 캡처


◇성교육을 부끄러워하는 부모들

다음으로는 성교육을 터부시하는 부모들의 인식이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부모들의 성교육에 대한 인식은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ㄱ원장은 "여전히 아이 부모들이 성을 '불결한 것'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영유아 시기 신체 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할 시기에 부모들이 성교육을 소홀히 하고 어린이집·유치원에 의존하면 왜곡된 성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요즘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 욕심이 아이의 발달과 인지상의 간극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ㄱ원장은 "요즘 부모들은 영유아 아동이 자신의 신체를 탐색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며 "외국어, 교과 학습 등이 이뤄지기 전에 기본적인 신체 교육과 인성 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효성 없는 성교육



세 번째는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어린이집 아동 교육은 교육부에서 정한 '표준보육과정'을 따른다. 영유아 단계에서는 '소중한 나'와 '안전' 부분에서 성과 신체에 대한 지식을 포괄적으로 가르친다. 영유아는 아직 구체적인 성교육보다, 나에 대한 탐구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시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유아 시기부터 올바른 성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표준보육과정 상 성폭력 예방 교육의 경우 아동이 학대·성폭력·실종·유괴상황 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등 '대처' 차원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공 대표는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안 돼요' '싫어요' 만으로는 자기 몸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사회 변화에 맞는 새로운 인식·제도 필요해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 역시 예전 아이들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의 변화 속도에 맞게 새로운 인식을 확립하고 교육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맞는 체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성폭력 또는 유사행동은 절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들을 전부 아이들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다"며 "아이들에게 특정 행위가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공 대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성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부모들이 내 아이를 감싸거나 문제를 외면하기만 하는 교육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조건 아이들을 '범죄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는 게 현장 교육전문가들의 시각이다. ㄱ원장은 "영유아의 성 문제는 일반 성인의 문제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며 "영유아 아동의 행동을 성인의 '성적 행위'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낙인찍기 행위로 변질돼, 아이들을 잘못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아동에게 책임을 지우고 경계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 사회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아이가 자라나는 가정과 주변 환경을 가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곧 어른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가정과 사회의 충분한 관심과 보살핌 없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엄마들도 두려운 유아 성교육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추상적·대처 중심·일괄적' 한국의 유아 성교육 제도

현재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개발하고 보급한 '표준보육과정'(만 0~5세 대상)을 따른다. 특히 만 3~5세는 교육부가 보급한 '누리과정'(3~5세)에 포함된 내용으로 교육하고 있다. 그중 성교육은 표준보육과정에서 0~1세, 2세, 3~5세로 연령별로 세분화돼 신체 건강을 다루는 '소중한 나' 또는 '안전' 부분에서 다룬다. 성교육에 대한 별도의 장은 없다. 그런데 표준보육과정 상 영유아를 위한 성교육은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고 알아보는 수준에 그친다. 영유아 시기는 아이들이 성 개념보다,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는 단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문제는 '피해자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아동의 가해를 방지하기보다는, 피해 예방 및 대처 차원에 그친다. 표준보육과정의 성폭력 예방 교육의 경우 '아동이 학대·성폭력·실종·유괴상황 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명시하고 있다. 또 아동복지법 제1장 11조(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5년마다 아동의 양육 및 생활환경, 언어 및 인지 발달, 정서적ㆍ신체적 건강, 아동안전, 아동학대 등 아동의 종합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공표하고, 이를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개별 아동에 대한 진단이 어렵고, 사후 대처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표준보육과정 만 5세 아이 지도 총론 중 '신체,운동,건강 영역 - 건강하게 생활하기' 중 일부표준보육과정 만 5세 아이 지도 총론 중 '신체,운동,건강 영역 - 건강하게 생활하기' 중 일부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피해 아동에게는 구체적인 대처 방법을 알려줘야 하고, (잠재적) 가해 아동이 될 수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인식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공 대표는 "혹시 누군가 만질려고 하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해라"는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의 성교육 제도가 변화하는 아이들의 발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발달 속도는 아이들 개인별 경험과 성장 배경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울 종로구의 모 어린이집 ㄱ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개인별 경험, 상황에 따라 발달 속도가 제각각이다"며 "연령별로 짜여 있는 현행 교육 방식은 요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평균 수준의 발달 속도에 있는 영유아들에게는 기본 교육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주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성 관념이 빠르게 잡힌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상위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단순 연령 구분이 아닌, 아이에 대한 발달 상태 진단과 함께 '맞춤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 어린이집에서 쓰는 성교육 자료는?

참고할 교육안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넘친다. 2016년 '유치원 성교육 프로그램(교육부)', 2015년 '유치원 성교육 표준안'(교육부), 2006년 '유아를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교육인적자원부) 등 유아 성교육 자료는 꾸준히 보급돼왔다. 내용도 꽤 세분화돼 있다. 2006년 유아를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유아 성 지식, 성폭력 예방 및 피해 후 대처에만 집중하고 있는 반면, 2015년 유치원 성교육 표준안은 '타인에 대한 성적 강요 행동'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에 대한 이해까지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매뉴얼은 의무 적용 사항이 아니며, 유치원을 대상으로 참고자료로 배포되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선 대부분 어린이집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육안을 활용하고 있다. 송파구의 어린이집 ㄴ원장은 "정부나 센터에서 나온 다양한 교육 자료들과 기타 연구, 논문 자료를 참고해 자체 교육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단순히 유인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상황극, 자유놀이 등을 통해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유아 부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가정에서의 성교육 상황은 현장보다 취약하다. 영유아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만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영유아 아동에게 성교육을 따로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살 여자 아이 아빠 변호영씨(32)도 "아직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해 성교육을 해보지 않았다"며 "하지만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성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4살 여자 아이 엄마인 김지원(가명·24)씨는 "아이들의 성 지식은 책에서 나와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습득되는 것 같다"며 "더 이상 가정에서도 '성'이 쉬쉬돼선 안 된다"고 가정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잇따른 아동 간 성폭력 사건 이후 성교육에 관심을 갖는 부모들이 많아졌지만, 이제 겨우 말을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대부분 혼란스러워 한다. 경씨는 "괜히 시도했다가 성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 두려움을 드러냈다. 김씨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만지면 안돼요!'를 가르치는 것뿐이다"고 털어놨다.

이에 아이가 아닌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모 어린이집 ㄴ원장은 "결국 몇몇 아이들이 조숙해진 데는 아이가 아닌 부모의 탓이 크다"며 "부모가 먼저 올바른 성 관념을 갖추고, 아이 상황에 맞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어린이집 부모 교육은 시설 재량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집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부모의 경우, 한국보육진흥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온·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다. 또 필요시 온라인 상담사에게 1:1 상담을 신청할 수도 있다.

◇영유아 교육, '아이 진단'이 먼저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영유아는 기본적으로 '나'와 신체에 대한 인식과 탐구가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신체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성교육이 이뤄지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현장 전문가는 성급한 성교육보다, 아이의 발달 상황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ㄱ원장은 "아무리 시설에서 가르쳐도 귀가 후 집에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어떤 발달 상황에 있는지, 해당 단계에 맞는 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기 아이에 대한 충분한 진단 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정답을 받아가려 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동시에 선행돼야 할 건 부모의 올바른 성 인식이다. ㄱ어린이집 3세반 유치원 교사는 "성에 대한 관심이 빠른 3세 아이 어머니께 아이의 행동들을 알렸더니 불쾌해 했다"며 "아이에 대한 교육은 시설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 먼저 성을 자유롭고 건전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아이를 바라봐야, 아이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다. 아이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상태를 애써 외면하는 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만큼, 어린 아이 때부터 성폭력 행위에 대한 인지 교육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 대표는 "피해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는 데도 나쁜 행동인지 몰라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어린 아이일수록 잘못된 행동을 정확하게, 꾸준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전국민 성교육 체계 가동

유아 성교육에 부담을 느끼는 우리나라와 달리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는 유아 성교육을 포함한 '전국민 성교육' 체계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세계에서 성교육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스웨덴은 1897년부터 성교육을 실시해, 1956년부터 아동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만 4세부터 연령에 맞춰 성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피임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독일 역시 1968년부터 성교육을 정식과목으로 시행하면서 1992년부터 성교육 의무화를 강화했다. 독일은 '포괄적으로 모든 연령과 계층에서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을 성교육의 모토로 영유아 때부터 성교육을 한다. 바이에른 주의 사회부 장관 크리스타 스테븐스는 "성교육이 11세에서 12세 사이에 이뤄지는 것은 너무 늦다"며 "더 이른 나이에 성교육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을 누빈 성교육 전문가 노미경씨(한국성폭력상담소 객원 강사)는 "북유럽 가정에선 아이들이 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면 2~3살이어도 터놓고 알려준다"면서 "한국의 부모들처럼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절제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자위하는 법을 알려줄 때 '기분이 좋지만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절제 방법을 정확하게 인지시킨다"면서 "성교육과 인성 교육을 함께 가르치고 부모의 올바른 성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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