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 속죄한 독일 부호 '출생의 비밀'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9.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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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피크림 보유 JAB 가문
생존자 지원단체에 거액 기부
집안 3세들엔 유대인 피 섞여

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을 지원한 독일 라이만가문의 알베르토 라이만. 라이만가문은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고 거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사진=알베르토 란데커 재단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을 지원한 독일 라이만가문의 알베르토 라이만. 라이만가문은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고 거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사진=알베르토 란데커 재단


독일의 최대 부호 가문이 74년 전 선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2차 세계대전 때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을 지원하고, 전쟁포로를 강제노동에 동원한 사실을 인정한 것. 거액의 보상금도 내놓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랑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속죄에 나선 주인공은 독일의 라이만가문으로 크리스피크림, 파네라 브래드, 피츠 커피 등 유명 식음료 브랜드를 소유한 JAB홀딩스를 이끌고 있다. 창업한 지 191년 된 가족회사로 기업가치가 200억달러(약 23조4000억원)에 이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의 레킷벤키저 지분 7.9%를 가진 주요 주주이기도 한다.



전쟁포로 강제노동시켰던 선조
지금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JAB홀딩스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다. JAB홀딩스 전신인 벤키저 시절 나치 정권에 적극 협력한 것. 당시 열렬한 나치 추종자였던 알베르트 라이만은 나치가 끌고 온 전쟁포로를 강제노동에 투입했다. 임금도 주지 않았고, 목숨을 빼앗는 등 잔인하게 대했다.

나치는 전쟁에서 패배했으나 라이만가문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들인 알베르트 라이만 주니어가 경영을 이어받았고, 회사 규모는 오히려 더욱 커졌다. 라이만가문은 과거의 잘못을 숨기고 은폐하는 대신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로 했다.



라이만가문은 200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문의 나치 협력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2014년에는 역사학자에게도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당시 군수품을 생산하던 벤키저가 강제노동자를 동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라이만가문은 12일(현지시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단체인 '클레임스 콘퍼런스'에 500만유로(약 65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기부는 앞으로 3년 동안 라이만가문이 세운 '알베르트 란데커 재단'을 통해 진행된다.

클레임스 컨퍼런스는 라이만가문의 기부 결정에 대해 "홀로코스트 생존자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이뤄진 기부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피터 하르프 JAB홀딩스 회장이 직접 나서 "1954년 숨진 알베르트 라이먼과 그의 아들 알베르트 라이먼 주니어는 유죄"라며 자선단체에 1000만유로(약 13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유대계 포로와 사랑에 빠진 아들
라이만가문의 속죄 활동 배경에는 비사가 존재한다. 아버지 공장을 이어받은 알베르트 라이먼 주니어가 당시 강제노동자로 끌려왔던 19세의 에밀리 란데커와 사랑에 빠진 것. 란데커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나치에 죽임을 당했다.

알베르트 라이먼 주니어는 다른 여성과 결혼했지만, 자녀를 갖지는 않았다. 대신 란데커와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뒀으며, 1960년대 입양 형식으로 모두 자신의 호적에 올린다. 현재 라이만 가문을 이끄는 주요 인사의 혈통에 유대인과 전쟁피해자의 피가 섞인 것이다.

라이만 주니어와 란데커는 각각 1984년과 2017년에 세상을 떠났다. 라이만가문이 이들의 기려 만든 재단이 '알베르트 란데커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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