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없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 주민들, 자치요구 뿔났다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2019.12.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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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섬 인구 하루에 2~3명 꼴로 빠져나가고 있어…1970년대부터 자치권 독립 운동 이어져와

연간 200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도시 베네치아가 자치권 획득을 위한 주민 투표에 나선다. /사진=로이터연간 200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도시 베네치아가 자치권 획득을 위한 주민 투표에 나선다. /사진=로이터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자치권 획득을 위한 주민투표에 나선다. 이번 투표는 1979년과 1989년, 1994년, 2003년에 이어 다섯번째다. 40년 가까이 행정구역 독립을 꿈꿔온 베네치아 주민들의 오랜 열망은 최근 들어 더욱 커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주민투표는 이날 오전 베네치아와 본토에 있는 메스트레지역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일반적으로 베네치아 하면 매년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물의 도시'를 떠올리지만 행정구역상으로 베네치아 광역시는 118개 섬으로 이뤄진 베네치아와 본토의 메스트레 등 두 구역으로 나뉜다. 역사적으로 베네치아와 메스트레는 서로 독립적인 지역이었으나 베니토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통치 때인 1926년 하나의 광역시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통합 이후에도 부유한 섬 베네치아는 사실상 독립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베네치아 인구가 메스트레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인구 분포가 역전되면서 문제가 됐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17만5000여명에 달하던 베네치아 인구는 현재 5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베네치아 섬에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민박과 호텔이 들어차 살 곳이 줄면서 주민들이 육지인 메스트레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하루 평균 2~3명꼴로 섬을 빠져나가면서 이 곳 인구는 연간 1000명 이상 감소하고 있다. 반면 현재 메스트레 인구는 13만4000명으로 베네치아의 세 배에 가깝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일자리 부족이 베네치아 젊은이들을 떠나게 하고 이로 인해 도시의 경제가 계속해서 관광에 더 의존하도록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남은 주민 중 절반은 65세 이상이다. 이 같은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베네치아의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줄어들자 베네치아 섬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광역시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관광객이 과도하게 몰리는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대응능력도 상실했고 정부 예산이 모두 메스트레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치권을 획득함으로써 독립적인 의회와 시장을 갖게 되면 독자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게 베네치아 주민들의 입장이다.

지난달 베네치아 섬에 1966년 이래 최대의 홍수가 닥치면서 주민들의 독립 욕구는 더욱 거세졌다. 홍수로 인해 베네치아의 낙후된 현실이 재조명됐고 지역 발전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자치운동을 주도하는 변호사 조지오 수피에즈는 "베네치아 주민들은 지금 몹시 화가 나있다"면서 "재해에 대한 물리적 대응력은 부재하고 관광과 투기는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주민투표에서 베네치아가 자치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베네치아 섬 주민들의 자치권 요구는 더욱 거세졌지만 본토인 메스트레 주민들은 분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스트레는 베네치아 섬보다 2배 많은 유권자를 가지고 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20만6553명의 전체 광역시 유권자들 중 18.6%만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투표는 오후 10시까지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해야 유효하다.


베네치아 광역시도 베네치아와 메스트레를 분리하는 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루이지 브루그나로 베네치아 시장은 유권자들에게 투표 거부를 촉구했다. 그는 2015년 선거운동 당시 베네치아 자치권에 대한 주민투표를 약속했음에도 이번 투표를 저지하고자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는 "독립은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작은 행정구역으로 관료주의를 나누는 것도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면서 "작은 것은 아름답지만 큰 것은 더 좋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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