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라", "팔아라"…기업 총수들의 말속에 연말인사 있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11.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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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라", "팔아라"…기업 총수들의 말속에 연말인사 있다


올 연말 재계 임원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사업재편이다. 기업들이 앞다퉈 포트폴리오 새판짜기에 나서면서 새로운 체제를 이끌 리더십 정립에 혈안이다.

재계 한 인사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고 국내 경기마저 가라앉으면서 실적 추락에 시름을 앓는 기업들이 생존을 걸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연말 인사는 이를 위한 포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올해처럼 임원인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조차 안 되기는 처음"이라며 "인사권자들도 변화에 대한 절박함과 이를 안정적으로 해낼 적임자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버려라" "팔아라" 생존 위한 '재편 인사' 예고
주요 그룹의 이런 분위기는 최근 잇단 회장단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그룹 CEO(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기존에 투입된 자원을 3년 안에 다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달라"며 성역 없는 자산 매각 가능성과 사업 개편 메시지를 던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이달 19일 미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릴 것"이라며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지난 9월 사장단 워크숍에서 'L자형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 경영환경에 맞춰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총수들이 변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위기감에서 시작한다. 모든 변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명제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변화의 물결과 함께 총수들의 목덜미를 조르고 있다는 얘기다.

"버려라", "팔아라"…기업 총수들의 말속에 연말인사 있다
"50대 임원도 개편 대상"…초읽기 들어간 LG
이번주 인사를 앞둔 LG그룹은 최근 10대 그룹 가운데 사업재편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 꼽힌다.


올 들어서만 LG전자의 하이엔텍·LG히타치솔루션,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사업부 등 10여건의 매각·청산 작업을 진행중이다. OLED(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 사업전환을 위한 LG디스플레이·LG화학·LG이노텍의 사업효율화 행보도 한창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50대 임원들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발탁승진한 일부 40대 임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임원이 교체 대상이라는 뜻이다. 취임 2년차를 맞은 구광모 회장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한 AI나 로봇 분야 등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뉴LG' 구상을 위한 파격 인사를 단행할지가 관심사다.

LG그룹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 9월 물러난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에 이어 조성진 LG전자 부회장도 용퇴를 결심했지만 일단 남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태원 '3년' 발언에 쏠리는 관심…대한항공 임원 20% 감축 고민
최태원 회장이 '3년내 다 없앨 수도 있다'는 표현을 언급한 SK그룹도 12월로 예상되는 인사에서 깜짝 변화를 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의 거취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다만 LG화학 (373,500원 ▲500 +0.13%)과 배터리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재계에서는 김 사장이 연임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장동현 SK 사장 역시 최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연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원태 회장이 키를 잡은 대한항공 (20,800원 ▲200 +0.97%)은 임원을 20~30% 줄이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노선 여객 수요 감소와 화물사업 부진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데다 올초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펀드)의 경영권 압박과 고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사를 뛰어넘은 만큼 쇄신 수요가 누적된 상황이다.

해마다 재계 인사의 가늠자 역할을 했던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의 임원인사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판결을 앞두고 안갯속이다.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김기남(반도체)·김현석(가전)·고동진(스마트폰) 삼두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버려라", "팔아라"…기업 총수들의 말속에 연말인사 있다
안정보다 변화·쇄신…파격 주문한 현대차·신세계
한발 앞선 임원인사로 비상경영체제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그룹도 적잖다. 현대차 (249,500원 ▼500 -0.20%)그룹은 지난달 말부터 해외법인장을 중심으로 사장·부사장급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제네시스 사업부장(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이용우 부사장)과 중국사업총괄 사장(이병호 사장→이광국 사장), 호주법인장(이정욱 상무→허준 상무), 멕시코 법인장 등이 교체됐다.

지난 4월 임원 직급을 상무로 통일하면서 수시 임원 인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라 연말 인사 요인이 크지 않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여전히 파격 인사 가능성이 나온다. 1000여명에 이르던 임원을 최근 3년 동안 900명대로 줄인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후문이다.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 부진을 마주한 이마트 (63,100원 ▲100 +0.16%)는 12월1일 정기인사 일정보다 한달 이상 앞당긴 지난달 21일 임원 40명 가운데 대표이사를 포함해 11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사상 첫 적자라는 초유의 악재 속에서 사업 전반을 개편하겠다는 정용진 신세계 (162,900원 ▼1,100 -0.67%)그룹 부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적쇄신 카드라는 평가다. 한화 (26,750원 ▼100 -0.37%)그룹도 평소보다 한달 빠른 지난 9월말 그룹 내 7개 대표기업의 CEO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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