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야후도 꼼짝못한다…'샤크 악명' 칼 아이칸, 누구길래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2019.11.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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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푸는 국제부 기자들(썰국열차)]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 그는 어떤 사람인가

칼 아이칸. /사진=AFP칼 아이칸. /사진=AFP


듀폰·야후도 꼼짝못한다…'샤크 악명' 칼 아이칸, 누구길래
최근 미국 사무기기업체 제록스는 종이문서 사용 감소로 매출이 급감하자 힘을 합쳐서 몸집을 키울 상대를 찾고 있습니다. 얼마전 후지제록스의 지분을 모두 후지필름에 매각한 제록스가 홀로서기 위해서는 관련 업체와 뭉쳐야만 합니다. 제록스는 더이상 자체적으로 사무용 기기를 만들지 않고 연 매출 대부분이 기기 대여 및 유지 사업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간은 여전히 후지제록스에서 제품을 공급받기로 했지만 제록스 역시 기업 인수(M&A)를 통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록스의 M&A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투자회사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인 칼 아이칸(83)입니다. 지분 10.6%를 보유한 제록스의 최대 주주 아이칸은 지난해 1월 후지필름이 제록스를 인수 제안을 보내올 때도 "제록스의 가치를 심하게 저평가했다"면서 "후지필름이 제록스를 훔쳐가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강하게 반발해 결국 인수를 막았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이 PC·프린터 제조업체 HP의 지분 4.24%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공개하면서 양사의 결합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제록스뿐 아니라 아이칸은 렌트카업체 헤르츠, 주방용품업체 뉴웰브랜드, 석유화학업체인 옥시덴탈 페트롤리엄과 듀폰 등 매우 많은 기업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이칸은 국내에서도 2006년 KT&G 주식을 매입해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진출시킨 후, 1500억원 가량의 매도 차익을 얻은 뒤 철수한 바 있는데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대기업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걸까요?

주주의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한다…'행동파' 아이칸
칼 아이칸. /사진=로이터칼 아이칸. /사진=로이터






"누군가는 인공지능(AI)을 연구해 돈을 벌지만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연구해 돈을 번다."




아이칸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면 지체하지 않고 곧장 행동에 나서는 행동파입니다. 이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가치가 상승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가치가 상승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 교체(CEO), M&A 제안, 수익구조 변화 등 직접 경영에 압박을 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경영진들은 이들이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하면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합니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 아이칸은 냉혹한 '기업 사냥꾼'으로도 불립니다.

아이칸은 1936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법대를 나왔지만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유대인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어머니는 교사로 일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이칸은 뉴욕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피를 매일 보는 것에 염증을 느껴 2년 군 복무 후 중퇴했습니다.

아이칸이 월가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1년입니다. 그는 1968년 파생금융상품 거래업체 '아이칸앤코'를 창업했습니다. 이후 아이칸앤코는 M&A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이칸에게 고초를 당한 기업은 담배제조업체 RJR 나비스코, 항공사 TWA, 영화제작사 타임워너, 휴대전화제조업체 모토로라, 인터넷기업 야후 등 숱합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아이칸의 순자산은 175억달러. 우리 돈으로 20조원이 넘습니다. 아이칸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자 중 한 명으로 2016년 대선 기간, 트럼프 캠프의 특별 고문을 지내면서 규제 개혁을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단기간에 수익 올리는 '기업사냥꾼' 아이칸


빌 애크먼. /사진=AFP빌 애크먼. /사진=AFP
아이칸은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기로 유명합니다. 이렇다 보니 이 '기업사냥꾼'은 기업뿐 아니라 다른 거물 투자자와도 맞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2013년 영양식품 회사 허벌라이프를 두고 아이칸이 헤지펀드 거인인 빌 애크먼과 맞붙은 일화는 유명합니다. 당시 애크먼은 10억달러어치 허벌라이프 주식을 공매도했습니다. 공매도는 자신이 가진 주식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주식을 빌려와서 파는 겁니다. 주가가 지금보다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우선 빌려온 주식을 팔아버린 후, 주가가 더 떨어지면 더 싼 가격에 주식을 다시 사서 그 차익을 투자자가 가져가는 겁니다. 때문에 공매도 이후에는 주가가 많이 떨어질수록 투자자가 이득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때문에 애크먼은 허벌라이프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게 됩니다. 미 증권감독원에 이 회사의 피라미드 영업방식을 고발하고 언론을 통해 공격에 나선 겁니다. 주가는 폭락했고 이때 아이칸이 끼어듭니다. 주가가 떨어지고 나니 싼값에 엄청난 양의 허벌라이프 주식을 매수한 겁니다.

아이칸이 대량매입하자 주가는 다시 엄청나게 솟았고 결국 애크먼은 10억달러를 손해보며 공매도 포지션을 정리합니다. 아이칸은 10억달러를 벌었다며 자랑했고요.

재밌는 사실은 허벌라이프가 피라미드식 영업을 한 것도 사실이고 애크먼이 얘기한 부분들이 틀린 사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 증권감독원에서 허벌라이프에 벌금을 매기기로 한 날 허벌라이프 주가는 폭등합니다. 시장에서 허벌라이프는 주가가 0으로 떨어져야 할 만큼 나쁜 회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칸의 '기업 보는 눈'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애크먼의 논리는 맞았지만 기업가치 평가는 틀렸습니다.

'백화점 부도'에 베팅한 아이칸…美백화점의 미래는?
지난해 10월 125년 역사를 지닌 미국 백화점 체인 시어스(Sears)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사진=AFP지난해 10월 125년 역사를 지닌 미국 백화점 체인 시어스(Sears)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사진=AFP
이쯤 되면 아이칸이 최근에는 어디에 투자를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미국에서 백화점 등 유통업체의 폐쇄가 잇달으면서 지난 19일 아이칸은 상업용 부동산의 부도에 베팅하는 채권에 투자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화점 소유주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아이칸은 최대 4억달러(약 4700억원)를 벌 수 있게 된다고 예상했습니다.

남은 빚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됐는데 아이칸은 어떻게 수억달러를 벌게 될까요. 미국 백화점이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은행은 안전하게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또 다시 채권을 발행합니다. 은행은 이 채권을 시장에 팔아 조기에 대출금을 회수하고 이를 사들인 투자자는 백화점이 납부하는 원리금을 직접 또는 발행회사를 거쳐 취득하게 됩니다. 연체율이 높을수록 대출금액에 대한 이자도 높아지기 때문에 투자 수익률도 높아지는 것이죠.

아이칸이 상업용 부동산의 부도에 베팅했다는 것은 미국 백화점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아이칸이 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인 것은 백화점 소유주들이 제때 빚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실제로 미국 오프라인 유통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시어스, 메이시스, 바니스 등 고급 백화점들이 온라인의 공세와 높은 임대료 상승에 줄줄이 파산 대열에 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WSJ는 "쇼핑객들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더 많이 구매함에 따라 백화점 건물에 빈방이 늘어나고 유동인구가 감소했다"면서도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냄으로써 계속해서 빚을 갚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칸의 최근 투자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기업 사냥꾼' 아이칸이 이번에도 과연 '백화점 사냥'에도 성공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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