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CEO? Yes, 한지영 오토위니 대표(12)

머니투데이 중기협력팀 배병욱 기자 2019.11.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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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정직원→팀장→CEO... "현재에 몰입하는 자에겐 기회 온다"

한지영 오토위니 대표/사진제공=오토위니한지영 오토위니 대표/사진제공=오토위니


Q : 다시 태어나도 CEO의 삶을 택할 것인가.
A : Yes(한지영 오토위니 대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

한지영 오토위니 대표가 예비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밋밋하다. 식상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한 말'들은 '진실'인 경우가 많다. 진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고, 그랬기에 지겨울 만큼 평범한 말이 된 셈이다.

희한하다. 실천은 못 하면서 진부하다고만 생각하니 말이다.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는 것 같다." 한 대표는 이 특별하지 않는 얘기를 '진심'으로 강조하는 이다. 그 자신이 알바생으로 들어가 정직원이 됐고, 팀장을 거쳐 CEO까지 됐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도 CEO의 삶을 택할 것인가" 한 대표에게 물었다. 그는 "고민이지만 일단은 Yes"라고 답했다. 이어 "의미 있는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힘들지만 정말 보람차다"면서 "꿈꿔온 것들이 서서히 실현될 때 쾌감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개인적 삶을 생각했을 때 다음 세상에서는 좀 부담 없이 살고 싶다"며 "CEO는 지독한 소명 의식이 없으면 못 할 일"이라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할 땐 CEO가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큰 착각이었죠."


◇CEO가 되다

2000년 초. 대학 졸업을 앞두고 좀 놀고 있었다. 졸업 후 입사할 곳은 정해진 터였다. 어느 날 아는 언니가 말했다. "지영아, 너 놀지 말고 아르바이트나 하나 할래? SK에서 신규 사업을 하는데, 알바생이 필요하대."

그렇게 들어간 곳이 SK엔카의 신규 사업 TF팀. SK가 중고차 거래 사업을 추진키 위해 구성한 팀이었다. 알바로 들어간 한 대표는 자료 조사 업무를 맡았다. 중고차 거래 인터넷 사이트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카피라이팅도 했다.

3개월짜리 알바였다. 정말 재밌었다. '중고차를 인터넷으로 사고파는 사이트를 만든다고?' 마냥 신기했다. 신나게 일했다. 재미나서 신나게 일하는 직원. 어떤 회사에서 마다할까. 알바 기간이 끝날 무렵이다. 회사는 제안했다. "너 돌아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웹사이트 제작을 맡아 볼래?" 알바생이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순간이었다.

그뿐 아니다. 웹기획팀의 팀장 자리까지 꿰찼다. 알바로 들어간 지 6개월 만이다. 카피라이팅 실력이 웬만한 웹에이전시 카피라이터보다 나았던 것이다. 당시 나이 23세.

그렇게 만들어진 사이트가 '엔카닷컴'이다. 한 대표는 엔카닷컴을 만든 주인공이다. 엔카닷컴의 기획과 운영 업무를 맡으며 5년가량 팀을 이끌었다. 2004년 어느 날 대표가 의견을 낸다. "엔카닷컴 사이트를 영문으로도 만들어 보자."

영문 사이트가 열렸다. 해외 바이어로부터 연락이 왔다. "차를 사고 싶다. 차를 좀 보내줄 수 있느냐"였다. 이를 계기로 스타렉스 2대를 라오스로 수출했다. 처녀 수출이었다. 모두 고무했다. "중고차 수출도 가능하겠구나. 본격적으로 한번 해 보자."

수출팀이 만들어졌다. 수출팀장은 한 대표. 이때부터 한 대표는 개발도상국을 누볐다. 한국 중고차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수요는 있으나 시장이 없었다. 중고차 수출의 경우 유통 경로가 복잡했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워낙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팔 사람'과 '살 사람'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국내 중고차 업계에서도 수출 욕구는 있었다. 하지만 언어가 안 됐다. 수출에 필요한 인력이나 마케팅 비용 등도 영세 업체들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SK엔카는 이 니즈를 파고들었다. '글로벌 오픈마켓을 만들자. 중소업체들이 중고차를 쉽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하자.'

'누구한테 맡길까...' 웹기획팀장과 수출팀장을 맡았던 한 대표가 적격이었다. 한 대표는 '글로벌 중고차 오픈마켓'을 론칭하는 신규 사업의 총괄 책임자가 됐다. 네이밍부터 기획, 사업 운영까지 총괄했다.

2010년 이렇게 나온 것이 '오토위니'다. 한·중·일·영·러, 5개 국어로 만들어진 사이트를 국내 최초로 론칭하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해외 바이어로부터 호평도 받았다. 러시아에서는 매체를 통해 핫한 사이트로 소개됐다.

백일몽이었던가.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인지도가 낮았던 탓이다. 당시 인식도 문제였다. 중고차 업체들이 중고차 가격을 인터넷으로 노출하는 걸 꺼렸다. 3년 넘게 운영했지만 성장세는 보이지 않았다.

"정리하자."

2013년 회사 내부에서 나온 얘기다. 한 대표는 눈앞이 캄캄했다. '몇 년 동안 그 고생을 했는데, 물거품이 되다니...'

'자식 같은 사업을 이대로 죽일 순 없다. 되든 안 되든 나라도 해야겠다.'

한 대표는 회사를 설득했다. "접을 바엔 차라리 제가 인수해서 나가겠습니다." 주변에선 만류했다. "곧 망할 게 뻔한데, 왜 굳이 그걸 혼자서 인수하겠다는 거냐."

한 대표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한 대표가 지분 100%를 인수했다. 오토위니의 대표가 된 것이다. 회사의 사업 부문을 개인에게 100% 양도한 건 SK에서도 처음이었다.

"나를 따르라."

고작 2명. 당시 15명이 넘는 팀원 가운데 한 대표와 함께 나가겠다고 한 사람은 둘뿐이었다. 2014년 그렇게 시작한 오토위니는 현재 6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국내 중고차를 수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플랫폼이 됐다. 전 세계 210여개국 30만명 이상의 바이어가 오토위니를 이용 중이다.

한 대표는 CEO로서 힘든 점도 언급했다. "인생을 걸었죠. 갖은 고생 끝에 '국내 최초'란 자부심으로 이런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근데 대기업이 이걸 그대로 베끼고 있어요. 이런 일이 많다고 뉴스에서 들어 보긴 했지만 저에게 닥칠 줄은 몰랐죠."

그는 "신사업 모델을 만들고 개척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다 완성해 놓으니 너무 쉽게 모방해버린다"고 했다. 이어 "기술 특허처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안타깝다"면서 "'베끼기'뿐 아니라 '정보 빼가기' 등도 괴로운 일 가운데 하나"라고 토로했다.

◇중기청원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중소 수출업체들이야 말로 소중한 국가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 수출업체들은 영세한 데다 매출이나 고용 규모 면에서 크지 않다 보니 여러 지원 대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육성 정책은 이해한다. 영세 수출업체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해외 시장을 개척 중이다. 이들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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