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대법원 징역 3년6개월 확정…‘성인지 감수성’ 적용 결과

머니투데이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9.09.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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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대법원 징역 3년6개월 확정…‘성인지 감수성’ 적용 결과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으며 법정구속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대법원이 2심 판결대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재판부의 시각이 판결의 이유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일 오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러시아, 스위스, 서울 등에서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5차례에 걸쳐 김씨를 강제추행하고 1회 업무상 위력으로 추행한 혐의도 받는다.



'성인지 감수성' 등의 판례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안 전 지사와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 안 전 지사의 일부 유죄를 인정하고 3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라 사건을 검토한 결과, 원심 판단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업무상 위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의 잘못이 없음을 확인한 사례”라고 밝혔다.



앞서 있었던 안 전 지사의 하급심이었던 1심과 2심 판결에서 판단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김지은 씨의 진술 신빙성 판단이었다. 1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김씨의 진술 중 많은 것들이 2심에서는 인정됐다. 그 이유가 바로 성인지 감수성이었다.

안희정 대법원 징역 3년6개월 확정…‘성인지 감수성’ 적용 결과
성인지 감수성이란 지난해 4월 대법원 판결에서 처음으로 등장해 주목받았다. 교수 A씨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이유로 해임당하자 해임이 잘못됐다며 제기한 소송에서였다. 이 사건에서도 1심과 2심 법원은 피해 여학생들의 진술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사건을 뒤집고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서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판결 이후 법원은 안 전 지사의 사건 외에 다른 사건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적극 반영하는 추세다. 성범죄 사건에서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 검사 측에선 진술과 간접증거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게 된다. 피해자의 진술이 인정되는지, 안 되는지는 판결의 핵심 쟁점이다.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피해자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고 보이더라도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검토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다만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이 법적으로 정의된 단어가 아니다보니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문제로 꼽힌다. 개별 판사마다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안 전 지사의 사건에서도 1심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님에도 판결이 엇갈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일부 법조계에서는 결국엔 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인지감수성을 발휘해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일지 결정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모든 간음에 대한 처벌을 위해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강간과 간음의 차이는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다. 하지만 이 또한 동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문제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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