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 '식품대란' 공포에 6조원 사재기…영국에 무슨 일?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9.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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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英 '노딜 브렉시트' 비밀문건
식료품 부족·가격 폭등 예상
영국인 사재기에 6조원 써…
총리 "죽는 게 낫다" 노딜 불사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인싸Eat] '식품대란' 공포에 6조원 사재기…영국에 무슨 일?
"식품·연료·의약품 부족으로 사회 무질서를 초래, 엄청난 경찰력을 투입해야만 할 것이다"

지난달 영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없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 단행시 벌어질 사회적 충격을 조사한 내용이 담긴 영국 정부 기밀문서가 현지 언론을 통해 유출되면서 입니다.

유출 문서에는 신선식품, 연료, 의약품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일자리 감소로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시위와 집회가 빈번해지고 엄청난 경찰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란 분석도 있었습니다.



영국 국무조정실은 보도 직후 곧바로 성명을 내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내용이고, 오래전 작성된 문서이며 상당 부분은 이미 해결된 사항"이라고 해명했지만, 외신들은 "최악보다는 오히려 타당한 사후 충격을 조사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어 지난 1일 마이클 고브 영 국무조정실장은 노딜 브렉시트시에도 영국엔 식량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재차 진화에 나섰지만 비판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에 대비하자'는 캠페인을 펼치면서 기존에 거론되는 수준의 충격은 없다며 홍보전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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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식품업계가 크게 반발했습니다. 영국 소매업 콘소시엄(BRC)는 고브 국무조정실장의 발언이 나간 직후 곧바로 성명을 내고 "노딜 브렉시트시 신선식품 공급에 영향이 없다는 건 근본적으로 틀린 얘기"라면서 "국경 통관 및 수속 지연으로 신선식품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응수했습니다.

BRC는 오는 10월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구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영국 식품음료연합 역시 11~12월은 신선식품 소비량이 늘어나는 시기여서, 예정대로 EU를 떠나게 되면 과일과 채소 품귀현상과 가격 폭등이 뻔하다고 전망합니다. 영국 토마토생산자협회(BTGA)도 연간 영국인이 소비하는 토마토 소비량 중 자체 생산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소비되는 식료품의 30%가량은 EU에서 수입됩니다. 이중에서도 과일과 채소, 생선 등 신선식품 의존도는 압도적입니다. 과일과 채소는 90%, 육류는 50%에 달합니다. 현재는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국경과 통관 절차를 통과하고 있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선 하루 만에 식품이 배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질좋은 와인, 치즈 등을 싸게 구할 수 있는 식료품 천국으로 불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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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딜 브렉시트시엔 영국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EU에게 '제3의 국가'로 분류돼, 자유로운 통관이 어려워져 기존처럼 신선한 식품을 하루 만에 EU 각국에서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어업 등을 놓고도 서로 영역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커져, 식료품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부담은 영국인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쿼츠는 연구결과를 인용해 노딜 브렉시트시 영국인들이 매주 식료품 구입에 기존보다 13유로(약 1만7200원)를 더 지출해야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675유로(약 89만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영국 워릭대와 브리스톨대는 노딜 브렉시트시엔 식료품 가격이 평균 22.5% 급등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채소류는 9%, 우유, 치즈, 계란 등은 23%, 고기 18%, 버터와 치즈 등 제품은 18%, 과일류는 16%의 가격 상승을 예상했습니다. 여기에 파운드화 약세 등 환율문제까지 겹치면 식료품 그야말로 폭등세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에도 식품대란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가운데에도, 지난달 말 환경식품농무부(DEFRA)가 식품업계에 따로 "액상란(liquid egg) 품절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국의 '식품대란' 공포는 확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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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안은 시민들의 반응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금융업체 프리미엄 크레딧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국인 5명 중 1명은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해 식품과 음료, 의약품 사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인당 사재기 금액은 평균 380파운드(약 56만원)로 이 규모는 총 40억파운드(약 5조9000억원)에 달합니다. 1000파운드(약 147만4600원) 이상을 사재기에 쓴 국민도 80만명가량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다른 조사결과는 영국인의 40%가 각종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선순위로는 식료품이 절반을 넘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생필품, 의약품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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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자 정계에서도 사사건건 존슨 총리에게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지난 4일 보리스 존슨 총리가 취임 후 첫 참석한 하원 질의응답 자리에서 "국민이 식료품, 의약품이 부족할지, 가격은 얼마나 오를지 알아야할 권리가 있다"면서 "노딜 브렉시트의 영향을 분석한 가장 최신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지난 4일엔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이 하원을 통과했고, 존슨 총리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상정한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안을 역시 부결됐습니다.

연이은 굴욕을 당한 존슨 총리는 급기야 오는 9일 조기총선안을 재상정한다고 밝히면서 브렉시트 연기를 EU에 요청하느니 "차라리 도랑에 빠져 죽는게 낫겠다"고 강경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현지 언론에서는 입지가 줄어든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할 경우 역대 최단기 총리 오명을 쓸 가능성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정된 브렉시트 단행일까지 오늘로 55일 남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Do or die)"라며 무조건적인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존슨 총리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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