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000원 맡기면 999원 주는 마이너스 채권, 왜 사나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19.09.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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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시대, 대처법]바클레이즈, 지난해 10월 獨 마이너스 금리 국채에 투자해 9% 수익률 기록

편집자주 바야흐로 초저금리시대가 도래했다. 저성장은 진작에 시작됐고 소비자물가도 마이너스가 됐다. 초저금리 시대는 모든 영역에서 기존에 익숙한 삶의 문법을 파괴한다. 금융회사들은 다른 생존방식을 모색해야 하고 개인들의 자산관리 방식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초저금리 현상이 확산되면서 마이너스(-)금리 채권이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채권을 사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더 내야 하는 셈인데도 자금이 밀려든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 속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틈새가 있다는 것이다.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마이너스금리 채권잔고는 올해 5월 8조 달러였는데 8월말에는 17조 달러로 급등했다. 전체 채권잔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서 25%로 상승했다.



이 뿐 아니다. 이자가 거의 없는 1% 이하 금리채권은 전체의 40%이고 2% 이하 저금리 채권은 무려 60%다.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1.3% 수준으로 역사상 최저점 부근에 도달했으나 글로벌 레벨로 비교하면 낮다고 하기 어렵다.

마이너스금리 채권이 이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리와 채권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아야 한다. 우선 채권을 사려는 자금이 늘어나면 당연히 채권가격이 상승한다.



예컨대 1년 뒤 원금 1000원에 이자를 20원 주는 채권에 매수경쟁이 붙으면 이자를 2원이나 5원 덜 받는 수준에도 거래가 이뤄진다. 채권가격은 상승하고 금리(수익률)는 낮아지는 것이다.

또 하나 봐야 할 것은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자금을 푸는 방식이다. 정부의 재정지출도 있으나 중앙은행을 통해 국공채, 회사채 등 채권을 사들이는 비중도 막대하다.

일례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2008년 말 기준금리를 제로(연 0~0.25%)로 낮춘 후 6년간 채권 매입 등으로 4조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풀었다.


최근 환경도 이와 유사하다. 세계 각국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글로벌 경기가 침체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일제히 자금을 풀고 있다. 이 자금이 일시에 몰리다 보니 채권 가격상승(금리하락)이 이뤄진 것이다.

이런 흐름을 잘 타면 마이너스 금리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국채 10년물 수익률(금리)은 지난해 10월 0.4%대에서 올해 8월 사상 최저점인 마이너스(-) 0.72%까지 하락했는데 투자은행 바클레이즈(Barclays)는 이 기간 해당 국채 투자로 9%대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독일 국채 강세는 유럽 중앙은행(ECB) 자금유입 영향이 컸다. ECB는 유로존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3월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시작해 지난해 말 종료했는데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만 2조6000억 유로다. ECB는 올 7월 통화완화 추가정책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가 산 금리보다 더 낮은 금리로 채권을 사줄 투자자들이 있으면 마이너스 금리에서도 이익이 난다"며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현재보다 더 낮은 금리에도 채권을 매수할 것이라는 시장의 확신이 채권가격 강세를 끌고 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바클레이즈 사례처럼 마이너스 금리 채권 차제로도 수익이 나는데 여기에 금리 선물과 옵션, 그리고 다양한 파생상품을 연계해 거래하면 수익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 환차익이나 다양한 프리미엄 거래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윤 연구원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의 경우 환차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투자 메리트로 부상한다"며 "달러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 발행된 국가의 통화와 1년만 교환해줘도 2%에 가까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만기에 따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틈새 거래 △위험자산 대피처로 안전한 채권에 투자해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수요 등도 마이너스 금리 채권의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마이너스 금리 채권이 계속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중이라 채권가격이 추가 강세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한편에선 "미국과 중국 무역분쟁이 타결되고 경기침체 우려가 줄어들면 금리가 오르며 채권버블이 터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 비중확대 등 채권수요 확대요인이 있지만 금리가 이미 크게 낮아진만큼 채권가격은 변동성 확대 부담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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