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프락치 '김 대표'에게 지급한 녹음기 위장용 가방. 3중으로 겹쳐진 위장막을 벗겨내면 녹음기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A씨는 2015년부터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 자신이 속했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 민간인들을 사찰했지만 항상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다. 지인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과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안면 마비까지 왔다.
A씨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당신들이 날 망가뜨렸으니 생계를 책임지라'고 말하면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질책 뿐이었다"며 "오히려 내가 감시하던 대상 중 한 명이 신용대출을 받아 나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마음을 굳히고 일을 그만두겠다 하자 국정원의 협박이 돌아왔다. 언론에 알리겠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국정원은 A씨를 압박했다. 오히려 하던 일을 '아름답게' 정리할 시간을 줄테니 6개월만 더 일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A씨는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지니 보상을 해달라고하고, 보상해주지 않으면 그동안 있던 일들을 언론 등에 알리겠다고 했다"며 "그러니 국정원 과장이 '나는 수지킴 사건도 겪어봐서 그냥 대응만 하면 된다. 언론은 돈 되는 일 아니면 보도 안 한다'고 윽박질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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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치 활동으로 A씨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론 폭로 이후의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다. 단지 A씨는 자신을 노예처럼 부린 국정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A씨는 "내 인생은 이미 국정원 때문에 다 망가졌다"며 "내가 사찰하던 대상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위해 언론 공개가 끝난 뒤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국정원과 정부를 상대로 지난 5년을 보상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