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판결 피해자들 "일본 적반하장에 원통·분노"

머니투데이 안채원 기자 2019.08.02 15:15
글자크기

[the L]징용피해자 법률대리인단 "배상과 경제보복은 다른 문제"…대법원 판결에도 전범기업 측은 '배상 거부' 계속돼

[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판결 피해자들 "일본 적반하장에 원통·분노"


백색국가 제외로까지 이어진 한일 갈등의 시발점은 지난해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다.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춘식씨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일본 전범기업 손해배상금 받기 위한 법적 절차,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에선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과 같은 전범기업 국내 재산을 압류하기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1일 처음으로 일제 전범기업들의 국내 자산에 대해 강제매각절차가 시작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에 근거해 압류했던 일본제철, 후지코시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면서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이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과 울산지방법원에 각각 '일본제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피엔알의 주식 19만4794주(9억7400만원 상당)'와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회사의 주식 7만6500주(7억6500만원 상당)'에 대해 매각명령신청을 냈다. 이 주식들은 지난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승소로 올 들어 압류가 이뤄졌다.

[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판결 피해자들 "일본 적반하장에 원통·분노"
당시 대리인단은 "강제동원 가해 기업을 비롯한 그 어떤 주체로부터의 의사표시도 받은 사실이 없다. 이에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대리인 지원단은 더 이상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환가절차(압류한 주식, 특허권 등을 처분해 돈으로 찾는 절차)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절차 진행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법원행정처는 "7월4일 일본제철 관련 주식의 특별현금화명령을 위한 심문서 및 국내송달장소 송달영수인 신고명령의 송달촉탁서를 접수하고 7월8일 이를 발송했으며 현재 위 서류가 아직 일본 기업에 도착하지는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강제매각 절차가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 일본제철이 관련 심문서를 송달(소송법상 당사자 기타 이해관계인에게 소송관계 서류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법원이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서면을 보내는 것) 받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문서가 송달된 후 60일 이내 일본제철의 답변이 없으면 법원이 심문 절차 없이 매각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법원이 실제로 재산 매각을 결정하기 위해 별도 감정이나 심문 절차를 거치거나, 결정을 일본 기업들에 송달하는 등의 기간 등을 감안할 때 자산이 실제 현금화되기까진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판결 피해자들 "일본 적반하장에 원통·분노"
[백색국가 제외]강제징용판결 피해자들 "일본 적반하장에 원통·분노"
반면 강제징용 등 전범기업 피해자 측 움직임은 빠르다. 지난달 23일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서 소유한 특허권 6건과 상표건 2건에 대한 매각명령신청서를 대전지법에 접수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피해자 5명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국내 재산 명시신청에 대해 '각하'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서류가 전달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지난 4월24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신청을 제출했다. 재산명시신청이란 재산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채권자가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다.

소송에 패소한 피고가 판결에 따른 돈을 지급하지 않고, 채무자의 재산 범위를 모르는 경우 원고는 법원에 피고의 재산을 명시해달라는 신청을 낼 수 있다. 대리인단 측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 등이 이미 압류된 사실이 있으나, 지적재산권 이외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 측 대리인단 "피해자 배상이행과 경제문제는 다른 문제로 봐야"

김성주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소감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사진=뉴스1김성주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소감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사진=뉴스1
일본 측의 '한국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 내려진 2일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 측 대리를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는 머니투데이 더엘(theL)과의 통화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문제와 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배상 이행 문제는 각각 다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 측의 2차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배상받는 것을 포기하면 일본이 경제공격을 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본질적으로 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들 배상 문제와 경제 문제는 섞어서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고 답했다.

그는 "일본이 물론 배상 판결로 인해 기분이 나빴을 수는 있었겠지만 각 문제의 원인과 처방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본 정부는 여태까지 피해자 배상 문제 때문에 경제 보복을 했다고 밝힌 바가 없고, 오히려 안보문제 때문이라고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두 가지 문제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려는 것은 국론을 분열할 수 있는 위험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며 "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들 때문에 이 일이 생긴 것처럼 표현이 되기 때문에 국민을 분열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단계가 심화되고 있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 측 입장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일관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양국 정세에서 고려할 문제가 있다면 우리도 고려하겠지만, 지금은 가해자 쪽에서 어떤 변화도 없이 피해자를 공격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성이 없는 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징용·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들의 반응에 대해선 "'재판에서 간신히 이겨놨더니 일본 측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는 반응"이라면서 "굉장히 원통해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